경제규모가 비슷한 국가들 중 한국의 내수비중이 최하위권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관세정책이 수출을 강타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충격을 버텨낼 내수경제의 힘도 부족할 것이 우려된다.

23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내수소비 추세 및 국제비교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내수 비중은 2023년 기준으로 49.9%에 그쳤다. OECD 38개국 중 28위이며, 경제규모가 1조달러를 넘는 12개 회원국 중에서는 11위에 그쳤다. 우리나라보다 내수소비 비중이 낮은 국가는 이스라엘, 체코, 스웨덴, 룩셈부르크 등 인구 1000만명 이하의 내수시장이 협소한 국가들이었다.

내수비중이 높은 미국(67.9%)과 영국(63.0%)은 물론이고, 상대적으로 내수비중이 낮은 일본(54.5%)과 독일(52.7%) 역시 한국을 웃돌았다. 수출 제조업 중심 국가들 간의 비교에서도 한국의 내수비중은 유독 낮은 수준이다. 

최근 추이는 더욱 좋지 않다. 1988년 올림픽 이후 꾸준히 상승해온 내수비중은 2002년 56.3%를 기록한 후 하락세로 전환했고, 2021년 코로나 기간 중 47.1%까지 떨어졌다.

내수비중 하락세의 배경에는 소비성장률 하락이 있었다. 1988~1996년 사이 9.1%였던 평균 소비 성장률이 1997년 외환위기 이후에는 4.5%(97~02년)로 낮아졌고, 2003년 카드대란 이후 3.1%(03~07년),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는 2.4%(08~19년)로 낮아졌다. 최근 2020년 코로나 사태 이후에는 1.2%를 기록하며 내수소비 성장률이 1%대까지 떨어졌다. 

대한상의는 내수소비 부진의 중장기 요인으로 고령화로 인한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령층 소비성향의 감소를 가장 먼저 꼽았다. 

65세 이상 인구 비중은 2000년 7%에서 2024년 20%까지 빠르게 증가했다. 하지만 2006년 4분기 60세 이상의 평균소비성향은 81.3%였으나 2024년 4분기에는 64.6%까지 떨어졌다. 

가계자산의 상당부분이 부동산에 묶여 있는 상황도 주요 요인으로 지목했다. 우리나라 가계 자산에서 부동산이 차지하는 비중은 70.5%, 임대보증금까지 포함한다면 77.3%로 매우 높은 편이다. 

가계 신용은 2002년 말 465조원에서 2024년 말 1927조원으로 4배 이상 증가했고, 금리상승기 이자부담이 늘어나면서 소비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급부상했다. 

산업의 취업유발계수가 점차 하락하고 있는 점도 중장기 요인으로 들었다. 제조업의 취업유발계수는 2000년 15.4에서 2020년 6.3까지 떨어졌고 특히 반도체·화학 등 수출을 이끄는 산업들은 더욱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수출이 잘되더라도 고용을 통한 내국인 소득과 소비 증가가 유발되지 않는다는 의미다. 

내수부진에 대한 단기해법으로 대한상의는 공격적 경기부양 정책(Recession Attacking)을 제안했다.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영국에서 제안됐던 방식으로, 단기 경제 충격을 완화하면서도 산업 인프라와 같이 미래 성장을 위한 투자에 집중하는 정책이란 설명이다. 

유사한 국내 사례로는 1999년 추진된 ‘사이버코리아 21’이 있었다고 들었다. 당시 정부는 초고속 인터넷망 구축과 전자상거래 육성에 나섰고, 그 결과 2000~2005년간 GDP가 연평균 5% 성장할 때 정보통신산업은 14%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했다.

대한상의는 현재도 AI 기반 산업전환을 이루기 위해 데이터센터, 전력망 등 정부의 대규모 인프라 투자가 필요한 만큼 이런 분야에 정부지출을 늘려 경기부양과 미래산업 육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전기차 및 노후차 교체 지원, 고효율가전 구매비용 환급 등 에너지 효율이 높은 내구재를 보급하기 위한 사업을 통해 단기 소비수요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고령층 대상으로는 주택연금, 사망보험금 유동화 등 금융상품을 통해 고정적 현금흐름을 창출해 소비에 나설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단기적 대책과 함께 구조적 요인을 해소해나가는 중장기 대책도 제시했다. 우선 취업유발계수가 높은 AI, 소프트웨어 등 중간재 서비스분야를 키워야 한다고 봤다. 

동시에 늘어나는 고령층의 소비여력 확충을 위한 대책과, 생산 및 소비인구 감소에 대응해 해외 인구의 유입 정책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현수 대한상의 경제정책팀장은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상황에서 튼튼한 내수 기반은 경제의 변동성을 줄이고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꼭 필요하다”며 “그동안 소비심리 회복을 위한 단기 처방이 반복되어 왔지만 소비 둔화 흐름을 근본적으로 바꾸지 못한 만큼, 이제는 미래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더불어 우리경제의 구조개혁을 병행해 나가야 한다”고 밝혔다. 중기이코노미 이창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