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전인수식 평가로 물의를 빚은 한남더힐 감정평가에 관여한 4명의 감정평가사들이 1~14개월의 업무정지 처분을 받았다. 특히 세입자 측 감정평가사들은 1년 이상의 업무정지를, 소속 감정평가법인들은 2억원 내외의 과징금을 물게 됐다. 부실평가 책임을 물어 감정평가법인에 과징금이 부과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국토부는 감정평가 신뢰도를 추락시킨 감정평가사와 감정평가법인에 대해 업무정지, 과징금 부과, 엄중 ‘경고’ 등의 조치를 한다고 30일 밝혔다. 이는 지난 24일 감정평가사징계위원회(이하 위원회) 심의·의결을 거쳐 결정된 것이다.

세입자 측이 내세운 나라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업무정지 1년2월)와 제일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업무정지 1년)는 물론, 시행사 측이 내세운 미래새한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업무정지 1월)와 대한감정평가법인 소속 감정평가사(업무정지 2월)에 대해서도 징계 처분을 내렸다. 나라와 제일 감평법인에는 각각 2억4000만원, 1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미래새한과 대한 감평법인은 엄중 경고를 받았다.

소속 감정평가사의 부실평가에 대한 책임을 물어 해당 감정평가법인에 과징금을 부과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국토부는 “부실평가 근절에 대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를 업계에 전달함으로써 업계 자체적으로 경각심을 고취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국토부는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협회에 대해서도 관련 타당성조사 과정에 대한 감사를 벌였다며, 그 결과에 따라 한국감정원과 한국감정평가협회에 담당자 문책과 제도개선을 요구했다고 발표했다.

먼저 한국감정원은 한남더힐 타당성 심의를 위한 심의위원회를 구성하면서 심의위원 3명을 배제했다가 다시 포함시키는 등 위원 구성에 연속성·일관성이 없었고, 타당성 재심의 진행 과정에도 미숙한 점이 있었다고 국토부는 전했다.

한국감정평가협회는 감정평가사 교육 관리와 지도·감독을 소홀히 하고, 부실평가로 인한 징계대상자를 경미하게 처벌하는 등 업계 관리를 소홀히 해 감정평가사들의 책임성 약화 원인을 제공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임대→분양 전환 과정에서 아전인수식 감정평가

  ©중기이코노미

한남더힐은 강북 부촌으로 꼽히는 서울 한남동 유엔빌리지 옆 구 단국대 부지의 600가구(지하 2층~지상 12층 32개동) 규모 고급 임대아파트 단지다. 분양 당시 유명인사 행렬과 최대 25억원에 달하는 임대보증금으로 화제가 됐다. 지난해 7월 분양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문제가 불거졌다. 분양가 산정을 위해 시행사와 입주자 측이 각자 입맛에 맞는 감정평가법인을 선정한 것이다. 양측의 평가액을 평균내 분양가를 산정하기 위한 전초과정이었다.

국토부에 따르면 이 아파트 600세대에 대한 평가총액이 세입자측은 1조1699억원, 시행사측은 2조5512억원이었다. 양측간에 2배 이상 차이가 났다. 87㎡형의 경우 세입자측 평가액은 3.3㎡당 244.9만원, 시행사측 평가액은 374.3만원이었고, 평형이 커질수록 격차는 더 벌어졌다. 332㎡형의 경우 양측 평가금액이 각각 3.3㎡당 290.4만원과 794.4만원으로 2.7배의 차이가 났다.

논란이 불거지자 국토부는 지난해 말 한국감정원에 타당성 조사 지시를 내렸고, 감정원은 양측 모두에 부적정 판정을 내렸다. 한편 한국감정원이 제시한 600세대 전체 적정가격 수준은 1조6800억원~1조9800억원이었다. 87㎡형은 3.3㎡당 300만~350만원, 332㎡형의 경우 460만~600만원이었다. 결과적으로 양측이 자신에게 유리한 감정평가인을 고용해 감정평가를 하면서 논란을 자초한 측면이 있다.

세입자 측 감평법인에 상대적으로 무거운 징계 내린 이유는?

감정원이 타당성조사 결과 제시한 적정가격 수준은 양측의 중간가격 수준이었지만, 세입자 측 2개 법인과 소속 감평사의 징계 수위가 시행사 측 2개 법인과 감평사에 내려진 것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에 대해 국토부는 “세입자 측 감평사들은 노후화된 공동주택 사례 선정, 지나치게 과소평가한 품등비교 등으로 1조1699억원의 평가금액을 냈다”고 밝혔다. 이 금액은 2009년 9월에 나라법인이 토지만 평가한 금액(1조600억원)및 2009년에 용산구청이 입주자 모집 승인한 임대료 수준(1조2000억원)과 별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여기에 법인 심사자가 별도로 있는데도 대표이사가 심사자란에 서명날인한 것도 지적됐다. 국토부는 이러한 중과실로 인해 평가를 잘못한 것으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반면 시행사 측 감정평가사들에 대해서는 “조망권 등 품등비교가 ‘일부’ 미흡했다”고 국토부는 밝혔다.

한편 한국감정원의 ‘적정가격 수준’은 타당성조사 과정에서 양측의 감정평가의 적정성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기준이며, 실제로 감정평가한 금액은 아니라고 국토부는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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