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기업의 대부분은 중소기업이다. 고용의 대부분도 중소기업이 만든다. 그래서 정부는 매년 큰돈을 들여 여러 지원책을 운영해왔다. 문제는 지원 규모는 큰데, 성과는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은행 최근 내놓은 보고서 ‘우리나라 중소기업 현황과 지원제도 개선방안’은 그 이유를 비교적 단순하게 설명했다. 지금의 지원 방식이 생산성이 높은 기업을 제대로 골라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주로 매출이나 자산 규모를 기준으로 지원 대상을 정하는데, 이 기준이 실제 기업의 능력이나 성장 가능성과 연결되지 않는다는 점을 지적한다.

반면, 보고서는 기업의 업력, 즉 창업 이후 몇 년이 지났는지가 생산성과 훨씬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고 분석한다. 새로 생긴 기업일수록 자본 생산성이 높고, 성장 잠재력도 크다는 해석이다.

흥미로운 점은, 지원 예산을 더 쓰지 않아도 기준만 바꿔도 효과가 달라진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시뮬레이션을 통해, 지금처럼 모든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매출 기준으로 지원하는 대신 업력 7년 이하 기업에 집중하면 총생산이 0.45% 증가한다고 했다. 임금도 1.08% 오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미 쓰고 있는 돈을 더 똑똑하게 쓰면 경제 전반의 역동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떠오르는 것은 이른바 ‘피터팬 증후군’이다. 중소기업이 조금만 성장해 기준선(매출 기준)을 넘으면 지원이 끊기고 규제가 늘어나는 구조 때문에, 기업들이 성장 자체를 피하려고 하는 현상이다. 실제로 기준선 바로 아래에 있는 기업의 40%가 지원을 받지만, 기준을 넘는 순간 지원율이 확 떨어진다는 데이터도 보고서에 실려 있다. 이런 구조에서는 누구라도 성장을 부담스러워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결국 ‘얼마나 지원하느냐’가 아니라 ‘어떤 기준으로 지원하느냐’의 문제다. 한국은행은 업력·혁신역량·생산성 중심으로 선별 기준을 재설계하고, 성장 단계별로 맞춤형 지원을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지금 같은 획일적 지원 구조에서는 기업의 행동도, 경제의 흐름도 제대로 바뀌지 않는다는 것이다.

유망한 기업이 더 빨리 성장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 그게 정책이 해야 할 일이다. 이제는 ‘양적 지원’보다 ‘정확한 지원’이 중요할 때다. 중기이코노미 채민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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