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란시츠코 교황이 16일 오전 순교자 124위 시복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광화문으로 가던 중 갑자기 차에서 내렸다. 단식농성 중인 ‘유민이 아빠’ 김영오씨의 손을 잡고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장면은 MBC, SBS, YTN 등의 중계화면을 타고 전국에 생중계됐다. 그러나 이번 방한의 ‘주관 방송사’ KBS로는 이 장면을 볼 수 없었다. 이른바 ‘교황 마케팅’에는 열심이면서도 세월호 관련 이슈에는 너무 쉽게 안색을 바꾼 것 아니냐는 논란이 일었다.

물론 KBS는 이 논란을 부정했다. 언론보도에 따르면 KBS는, 해당 사안이 발생한 다음에야 교황 관련 사안을 중계하도록 처음부터 편성을 잡아놨기 때문에 이 사안을 생중계하지 못한 것으로 해명했다. 늦게 중계했을 뿐 고의적인 누락이 아니라는 말이다. 24시간 내내 교황 관련 보도만 할 수는 없다.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그러나 여전히 아쉬움은 남는다. 예기치 못한 ‘긴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원래 편성 위에 속보 형식으로 보도하는 것은 너무도 익숙한 풍경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주관 방송사 아니던가? 온 나라를 신음과 오열로 몰고 간 세월호 유가족에 대한 교황의 깜짝행보가, 짧게나마 보도할만한 ‘가치’가 충분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KBS의 판단은 쉽게 수긍되지 않는다.

16일 밤 MBC 뉴스는 한 술 더 떴다. 시복미사 이후 깨끗해진 광화문 광장을 조명하는 등 교황 방한 뉴스는 여러 꼭지로 나눠 상세히 보도하다가도, 세월호 유가족 위로 소식만큼은 얼렁뚱땅 제대로 대접하지 않았다. 비슷한 시간 민영방송 SBS의 편상욱 앵커가 “지구를 반바퀴 돌아 우리나라에 온 교황이 34일째 단식 중인 유족의 손을 맞잡았다. 이번에는 가까이 있는 우리 정부와 정치권이 그분들의 손을 잡아줄 차례”라고 클로징한 것과 대조적이다.

세월호 참사 4개월만에 이뤄진 교황의 방한은 우리의 슬픔을 민낯 그대로 드러내놓고, 위로와 극복의 노력을 시작할 안성맞춤의 자리였다. 종교의 경계나 정치적 계산, ‘이제 그만’ 류의 조급증을 내보일 때가 아직은 되지 않았다. 우리의 공영방송들이 근원적인 치유의 기회를, 거기에 다가갈 가능성의 일부라도 허투루 날려보내지 않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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