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20일 자동차보험 할인할증 제도 개편안을 내놨다. 1989년 현행 할인할증 제도의 틀이 만들어졌으니 25년만의 개편이다. 지난 4반세기동안 우리나라의 자동차 관련 각종 지표와 문화는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현실이 변했기 때문에 이를 반영할 자동차보험 제도의 골격을 바꾸는 것은 일견 당연해 보인다. 이번 개편안의 골자는 사고의 경중이 아닌 사고 건수를 기준으로 할인, 혹은 할증의 기준을 정한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러한 개편방향에 대한 다양한 논거들을 제시했다. ‘점수제’는 우리에게만 있는 세계 유일의 제도라거나, 인적사고보다 물적사고의 비중이 높아졌다거나, 일부인 사고자보다 대부분인 무사고자의 보험료를 낮추는 효과가 있다거나 하는 것이 대표적이다. 보험개발원이 낸 ‘사고크기보다 사고건수가 장래의 사고위험을 정확히 반영한다’는 자료를 인용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많지 않아 보인다. 결국 핵심은 대기업인 자동차보험사들의 적자구조를 개선해주겠다는 것이고, 이를 위해 보험 소비자들이 피해를 감수하라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이번 개편안에 따르자면, 주차 부주의로 ‘살짝 긁힐’ 정도의 경미한 사고만 내도 최소 1등급의 할증요인이 되고, 아무리 경미한 사고라도 2회째부터는 무려 3등급의 할증요인이 된다. 이런 시스템 하에서라면, 웬만한 사고는 보험처리를 하지 않고 자비로 처리하려는 소비자가 늘게 될 것이다. 결국 소비자 주머니를 털어 보험자 곳간을 채워주자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논리가 된다.
더욱이 이번 개편안은 교통문화를 선진화하거나 보다 안전한 자동차문화를 만드는데도 아무 실익이 없어보인다. 자동차 보급이 보편화되면서 주차나 주행에 익숙지 않은 운전자들도 함께 늘어나고 있는 현실도 전혀 반영하지 않은 꼴이 됐다. 보험의 숙명이라 할 모럴 해저드에 대한 대안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자동차보험사들의 적자가 자동차보험제도의 구조적인 문제라면 어떻게든 해결책을 내놔야 한다. 그러나 이들 보험사들의 경영을 악화시키는 주요인은 보험사기와 외제차 수리비라는 것은 웬만한 사람은 다 아는 상식이다. 특히 보험개발원에 따르면 외제차의 평균 수리비는 276만원으로 국산차 수리비 94만원에 비해 2.9배에 달한다. 이것이 한국시장을 봉으로 여기고 비싼 부품값을 책정한 외제차 업체들의 탓은 아닌지 점검해 볼 일이다. 이번 개편안은 자칫 자동차보험을 ‘사고 선수’의 전유물화하거나 대부분 소비자에게는 ‘장롱보험’으로 실효성을 떨어뜨릴 수도 있는 문제를 안고 있다. 소비자 주머니를 먼저 엿볼 것이 아니라 근원적 문제에 눈을 부를떠야 한다. 금융당국의 자동차보험 할인할증 개편안은 전면 재검토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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