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관계부처 합동으로 ‘민생안정과 경제활성화 대국민 호소문’을 발표했다.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비롯해 미래창조과학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보건복지부, 국토교통부 등 주요부처 장관과 금융위원회 위원장이 호소문 발표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이름만 ‘대국민 호소문’일뿐 내용을 보면 국회에 발표한 글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지난 8월8일 긴급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서 민생관련 30개 법안에 대한 조속한 처리를 호소하였습니다만 그동안 아무런 진전이 없어 다시 한번 호소 드리기 위하여”라는 호소문 발표의 취지나, “이번 회기에 민생관련 법안이 통과되지 못하고 경제회복의 불씨를 살리지 못한다면 우리경제는 길을 잃고 회복하게 힘들게 될 것”이라는 내용을 보면 그 목적이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호소문이 예로 든 “가장 시급한 민생경제 관련 중점 법안 몇 가지”를 보면, 이것이 민생법안이 맞는지 의문이 든다.
우선 ‘서비스 발전 기본법’의 경우, 의료영리화를 촉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논란에 휩싸인 법안이다. 의료영리화 관련 내용을 제외할 경우 법안 처리가 가능하다는 야당의 입장에 대해 정부가 “일각에서는 이 법으로 의료민영화를 촉진한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사실과는 다릅니다”라는 호소문으로 응답한 셈이다. 의료민영화가 잘못된 표현이며 의료영리화가 적확하다는 점은 일단 논외로 하고, 정말 급한 법안이라면 논란이 있는 내용만 제외하고 우선 통과시키자는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을 이유가 없다. 결국 의료영리화에 대한 의심이 더욱 커져만 갈 뿐이다. 이런 법안을 ‘민생법안’으로 호도하며 국회를 압박하는 모습을 이해하기 힘들다.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의료법 개정” 역시 마찬가지 문제가 있다. 원격의료 도입을 놓고 의사협회 등은 반대입장을 명확히 밝혀 왔다. 올해 4월 정부와 의사협회는 원격의료의 시범사업을 우선 시행한 뒤 의료법 개정을 논의하자고 합의했으나, 이후 의사협회가 시범사업 참여에 거부하면서 사업시행은 난행에 빠졌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원격의료 도입을 위한 법개정이 아니라, 원격의료가 정말 문제가 없는지를 입체적으로 파악하고 데이터를 쌓는 일이다. 문제가 있다면 의료계의 의견대로 원격의료를 폐기해야 하고, 문제가 없다면 신뢰할 수 있는 자료로 의료계를 설득해야 한다. ‘민생법안’이라는 이름으로 밀어붙이기엔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이 너무나 지대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호소문에 포함된 법안 중에는 통과가 시급한 것이 맞는지, 정책효과나 대상을 볼 때 민생법안이 맞는지 의심스러운 예시가 없지 않다.
호소문에는 “관중석에서 지켜보며 관전평이나 해서는 안됩니다”라는 표현이 나온다. 국민들이 정부가 추진하는 정책에 대해 찬반 의사를 밝히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관중석에서 하는 관전평이 아니다. 이런 찬반의사를 하나하나 모아 정부의 정책 중 수정할 부분은 수정하고 힘 실어줄 부분은 힘 실어주는 것이 국회의 역할이다. 국회를 거수기 취급할 의사가 없다면, 정부는 즉시 논란이 있는 법안에 대해 수정할 부분은 수정해서 국민과 국회의 동의 하에 추진할 수 있도록 행동에 옮겨야 한다. “민생안정은 말보다는 과단성 있는 ‘실천’으로 계획보다는 국민이 ‘체감’하는 성과로 평가받아야 합니다”라는 호소문의 문구는, 그대로 정부에 돌려주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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