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6일 교육부는 한국사 교과서 발행체제 개선 토론회를 열었다가 씁쓸한 뒷맛만 다셔야 했다. 대부분의 역사학자들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의견을 쏟아냈기 때문이다. 이날 발제 혹은 토론을 맡은 13명의 전문가 가운데 10명이 반대로 기울고, 3명만이 찬성 쪽에 선데다, 이들도 전제조건을 단 제한적 찬성 의사를 표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찬성론자의 대표적 의견은 ‘정권의 입맛대로 역사의식을 주입할 수 없다’는 것이었으며, 반대론자들의 논리는 이미 알려진 바와 같다.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다양성을 강조하는 시대의 흐름에 역행할 뿐 아니라, 이 주장의 근거가 정치적 의도에서 발원해 학문적·교육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역사 관련 7개 학회가 28일 공동성명을 낸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한국사연구회, 한국역사연구회, 한국고대사학회, 한국중세사학회, 조선시대사학회, 한국근현대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학회 등 7개 학회는 공동성명을 통해 교육부에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시도 중단을 촉구했다. 교과서 국정제가 도입되면 역사교육과 연구는 물론 사회의 건강한 발전에 많은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는 경고도 남겼다.
이들 7개 학회는 이른바 ‘진보’나 ‘보수’로 규정될 수 있는 학회가 아닌 우리 역사학계에서 대표성을 인정받고 있는 학회들이다. 이들이 한 목소리를 낸 것은 작금의 사태가 얼마나 퇴행적이고 비역사적으로 변질될 수 있는지에 대한 이들의 우려를 방증하고 있다. 이들은 정부와 여당에서 밀어붙이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는 ‘교학사 교과서 구하기’ 실패에 연이은 것으로 그 의도가 무엇인지 물을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돌아보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 움직임은 편협한 역사관에 오류와 표절로 누더기가 된 교학사 교과서 문제의 연장선상을 벗어나지 못한 모양새다. 마치 “그렇게 마뜩잖아 하다가는 더 ‘센’ 놈을 만날 수도 있을 걸…” 하는 경고장을 받은 것 같아 영 뒷맛이 개운치 않다.
더욱이 황우여 장관의 “역사는 국가가 한 가지로 가르쳐야 국론 분열의 씨앗을 뿌리지 않을 수 있다”는 발언은 상명하달 군사문화의 잔재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역사는 그렇게 한 가지로 가르쳐지는(혹은 주입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그렇게 해서 일치된 국론이라면 제국주의시대 한가운데 전체주의 국가관과도 크게 다를 바 없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 제기한대로 ‘균형 잡힌’ 역사를 배우도록 하기 위해서는 편수와 검증 기능을 강화해 부끄럽지 않은 역사책을 만들도록 하면 된다. 이 과정에서 검정까지 전 단계에서 틈입 가능한 외압의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이견이 있는 부분은 있는대로, 부끄러운 것은 부끄러운대로 교과서에 실으면 되는 것이다. 류관순 열사를 홀대한 부분이 있다면 고처야 하고, 사실과 다른 것으로 나타났지만 북침론을 적은 책이 있다면 철저히 규명해서 사실대로 시정하도록 하면 되는 것이다.
정치의 입맛에 맞게 떡주무르듯 역사를 주무르는 일본의 사례를 목도하며 탄식에 빠진 우리가, 그 추하고 냄새나는 작태를 그대로 답습해, 마침내는 역사로부터 아무것도 배우지 못하는 실패한 민족이 되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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