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우리술 박성기 대표   ©중기이코노미

모처럼 우리 전통주가 주목받고 있다. 삼성 이건희 회장이 생일잔치에서 전통주 2가지를 만찬주와 후식주로 내면서부터다. 이들은 수십만원짜리 고급 와인과 어깨를 견주며 향을 뽐냈다. 설을 앞두고 고급백화점 선물코너에서 이들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기세다. 이런 고급술(그래봐야 이건희 회장 만찬주도 1만원대라고 하니 고급 와인이나 일본 청주에 비할 바는 아니다) 말고, 우리가 흔히 아는 막걸리는 어떨까? 수년 전 웰빙 바람을 타고 ‘떴다가 곧 가라앉아’버리지 않았던가? 

맑은 물, 좋은 쌀, 완벽한 공정

“대기업이 수출용 시장에 들어오면서 갑자기 주목을 받았던 것이 사라지면서 생긴 착시효과입니다. 6~7년 전에 비하면 시장은 많이 커진 상태입니다”

‘우리 술의 세계화’를 기치로 내건 (주)우리술 박성기 대표(49)의 설명이다. (사)막걸리협회 회장으로 유네스코 등재를 앞장서 추진중인 바로 그 사람이다. 

  

“사실 막걸리 산업은 이제 시작입니다. ‘잃어버린 100년’에서 깨어난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000년 역사가 어디 가겠습니까? 집단무의식처럼 내재된 것이 표출되면 앞으로 전망은 더 밝아지리라 생각합니다”

하긴 막걸리는 ‘우리 술’이었다. 집집마다 김치맛이 다르듯 술맛도 달랐다. 일본제국주의가 수탈을 시작하던 1907년 주세령이 공포되고, 1916년에는 집에서 담가마시던 가양주(家釀酒)에까지 면허를 매기면서 하나씩 둘씩 자취를 감췄다. 그렇게 100년 가까이 막걸리는 길을 잃었다.

“해방 후에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당장 먹고살기 급급한데 전통이니 하는 것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죠. 막걸리에 매겨진 지역제한도 고약했습니다. 경쟁요소나 규모의 경제를 고려할 수 없으니 산업화의 기반도 닦을 수 없었습니다. 그나마 자유롭게 산업화를 추진한지 십수년 됐을까요?”

막걸리의 유네스코 등재를 추진중인 박성기 대표.   ©중기이코노미

막걸리 세계화, 결론은 ‘현지화’

“국내산 쌀을 쓴다고 해서 시장에서 이익을 받는 것은 없습니다. 원가경쟁에서는 밀릴 수도 있겠지요. 그래도 이 길을 고수하려고 합니다. ‘우리술’의 목표는 ‘우리 술’의 세계화입니다. 우리 혼과 정성을 담아야 하니, 우리 땅에서 나는 우리 쌀을 써야합니다. 당장은 상대적으로 고전할 수 있겠지만, 이것이 표준으로 정립되면 또 괜찮아지겠지요”

우리술은 세계시장을 목표로 차곡차곡 발판을 다져왔다. 무역협회나 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도움을 받아 해외시장도 노크하고, 주류에는 필수사항이 아니라는 해썹(HACCP, 위해요소중점관리기준) 인증도 받았다. 200여가지 제품을 개발할 만큼 시야를 넓히고 내공을 닦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현지화, 시장의 입맛에 맞추는 겁니다. 일본 소비자들이 단 맛을 선호하는 것처럼 중국, 동남아, 유럽 모두 각각의 소비자와 궁합이 맞는 특성이 있습니다. 올해는 베트남에 기대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1억5000만원을 투자해 현지인 입맛에 맞는 제품을 준비했습니다. 유럽, 특히 맥주의 나라라는 독일에서도 좋은 신호가 오고 있습니다” 

우리술은 다양한 입맛을 사로잡기 위해 200여종의 제품을 개발했다. 이들에게 세게화는 현지화와 다름아니다.   ©중기이코노미

그는 유럽에는 ‘새로운 것’에 열려 있는 소비자들이 많다고 설명한다. 지난해 8만병을 수출한 ‘미쓰리(me3)’는 독일에서 맥주와 경쟁중이다. 현지 대리점에서 지속적인 판매의사를 타진해 왔다. 차근차근 세계시장으로 가는 열쇠를 깎고 있다. 2005년 수출을 개시한 우리술은 아시아, 유럽, 남미까지 25개국에 수출을 하고 있다. 400만불 수출탑을 수상하기도 했다. 

막걸리는 문화, ‘名酒’ 되려면 연구 서둘러야

“포만감, 막걸리를 마시면 쉽게 배가 부릅니다. 산업화 이전에는 좋았습니다. ‘농주’이기도 하고 식사 대용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는 이게 또 걸림돌이 됐습니다. 쉽게 취하지 않으니 ‘술’로서 매력이 떨어진다는 거였죠. 덕분에 막걸리는 잊혀진 존재와 다름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00년대 웰빙 시대가 오면서 이게 또 장점이 됐습니다. 막걸리 자체가 칼로리가 높지 않은데다, 안주를 많이 안먹어도 되니 비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쉽게 취하지 않으니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음주’는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환영받게 됐습니다. 식이섬유의 장내 활동을 촉진해 ‘몸에 좋다’는 이미지도 얻었습니다”

맥주도 초기에는 막걸리처럼 걸쭉한 술이었다. ‘보리로 만든 빵’이라는 요기 목적도 있었다. 요기의 용도를 버리고 알코올음료로 발전하면서 맑게 변했다. 이 대목에서 그가 주장하는 유네스코 등재 주장이 힘을 얻는다. 막걸리만 걸쭉한 고유의 원형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이다. 음식 자체로는 등재가 어려운 역사를 감안해 과학적 근거와 함께 막걸리를 둘러싼 ‘문화’와 ‘스토리텔링’을 서둘러 만들어야 한다고 덧붙인다. 유네스코 등재운동은 작년에 이어 올해도 진행중이다.

당연하게도 막걸리는 그에게 우리의 정체성과도 같은 ‘문화’다. 매출액이나 시장점유율로는 설명될 수 없는 ‘무언가’가 들어있어야 한다. 서구의 와인이나 일본의 청주처럼 국가적 지원으로 명주(名酒)로 육성되는 외국 사례는 뼈아프다. 양조법은 물론이고 마시는 방법, 예를 들면 잔을 잡는 길이와 각도까지 연구되고 있다는데, 우리는 갈 길이 멀다.

“우리도 백년을 내다보고 막걸리 문화를 연구해야 합니다. 귀하고 좋은 우리 술로 공을 들여야 합니다. 물론 명주를 만들어내지 못한 것에는 저희와 같은 업자들의 잘못도 있습니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재료, 표기법, 품질인증, 전용균, 전용효모, 그리고 막걸리와 얽히고 설킨 이야기들을 모두 연구하고 가다듬어야합니다”

“웃으며 빚는 술은 마시는 이도 웃게 한다”

이 회사가 만들어 온 200여 제품 중에 현재 가장 반응이 가장 좋은 것은 프리미엄 제품 ‘가평잣막걸리’와 젊은 층을 타깃으로 한 ‘미쓰리(me3)’다. 전자는 알코올 도수 6도의 ‘막걸리’ 개념에 충실한 제품으로 깔끔하고 깊은 맛에 지역 특산품 잣을 가미했다. ‘너무도 유명해진’ 양조장을 포함해 내로라 하는 도가들의 제품을 놓고 벌인 비공인 시음에서 가장 좋은 평을 받기도 했다. 여러 모로 우리술의 대표작이다.

미쓰리는 도수 3도의 제품으로 운동 후 청량감은 물론 피로회복에도 도움을 준다. 캔과 PET 형태로 나와 편의성도 높였다. 디자인도 ‘막걸리스럽지’ 않다. 지난해 농림부 주최 대한민국 우리술 품평회에서는 살균탁주 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한참 ‘뜨는’ 중이다.  

  

“미쓰리는 ‘미’자가 3개 있다는 뜻입니다. 쌀(米)로 만들어졌고, 맛(味)이 있을 뿐 아니라, 아름답기(美)까지 합니다. 술보다 술자리를 즐기는 분들에게는 최적이지 싶습니다”

직원은 도전하고 사장은 책임진다. 우리술 공장의 현수막.   ©중기이코노미

“2011년 막걸리 위상이 하늘 높은줄 모르고 올라갈 때도 위기라고 생각했습니다. 막걸리처럼 안정되지 않은 시장, 우리술처럼 규모가 작은 기업은 매일이 위기입니다. 2000년 제가 이 사업을 인수할 때는 막걸리 시장이 바닥이어서 힘들었고, 규모가 커지면서 사장 개인의 직관적 판단만으로는 경영이 힘들어지기 시작할 때도 위기였습니다”

역동적인 당신의 도전이 우리술의 자랑입니다. 실패를 두려워 마세요. 책임은 사장의 몫입니다. 

 

우리술 공장에 붙어 있는 현수막이다. 박성기 대표가 위기를 넘을 해법으로 꼽은 것은 역시 ‘사람’이었다.

“막걸리의 세계화라는 사명도 사장 개인의 것이어서는 헛구호에 그치고 말았을 것입니다. 직원 모두가 혁신을 고민하고 세계화를 생각합니다. 저는 이분들이 맘놓고 ‘활개를 치도록’ 자리를 깔아주고 책임을 져주는 자리로 만족하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200여 제품을 만들었고 수많은 마케팅 작업을 했습니다. 성공도 많았고 아마 실패는 더 많았을 겁니다. 하나하나를 원가, 혹은 기회비용의 개념으로 생각했다면 이어오지 못했겠지요. 하지만 이것이 내적인 역량을 키워온 것은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가족들은 도전을 멈추지 못할 겁니다. 성공과 실패의 사례들로 계획과 예산의 틀을 정할 수 있었으니 효율도 더 높아질 것입니다”

우리술 제2공장. 2차에 걸친 살균공정을 가능하게 한다.   ©중기이코노미

우리술의 엠블럼이자 근무 기조는 ‘주시락(酒時樂)’이다. 막걸리(酒)를 통해 즐거운(樂) 시간(時)을 만들자는 것이다. 이는 또 즐겁게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뜻하기도 한다. 직원이야말로 ‘제1의 내부고객’이므로, 가장 먼저 대접받아야 한다는 박 대표의 신념이다. ‘좋은 원료, 좋은 일, 좋은 고객’을 만들자는 이들의 의지이기도 하다.

“웃으며 빚는 술은 마시는 이도 웃게 한다”는 그의 말이 허언은 아니었던 셈이다. 맑은 물, 좋은 쌀, 완벽한 공정. 이 모두를 꿰어 보배로 만들 ‘사람’이야말로 그가 가진 최고의 경쟁력이라는 것이다. 2020년 수출 1000만달러, 내수 1000억원, 가족 1000명의 강자가 되겠다는 이들의 목표가 이뤄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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