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항소1부에서 의미있는 판결이 나왔다. 사단법인 오픈넷이 한국인터넷진흥원(KISA) 등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청구소송 항소심에서 원고 일부승소 판결을 내린 것이다. 이는 ‘불법’ 신고가 들어오면 “막고부터 보자”는 행정심의 관행에 사법부가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고 하겠다.

대략적인 정황은 이렇다. 지난해 4월 금융결제원은 자신들이 운영하는 ‘금융 앱스토어’를 비판하는 사이트 ‘금융 얩스토어’가 피싱 사이트로 의심된다며 KISA에 신고했다. KISA는 이 사이트를 제대로 심사하지도 않고 피싱 사이트로 보고 강제차단시켰다. KISA는 실제 수십분 이내에 이 차단을 해제했지만, 통신사들은 차단을 풀지않고 3일간 방치했다.  이후 오픈넷이 사이트 개설자 대신 KISA와 금결원, 이통사 등을 상대로 공익소송을 제기했고, 지난해 나온 12월 1심 판결은 KISA 등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이번 2심 재판부는 KISA가 법 위반 여부를 최종심사할 고도의 주의의무를 기울이지 않은 과실이 있어 사이트 접속 차단은 위법이라고 판단했다. 이통사도 제때 차단을 풀지 않은 과실이 있다고 판단했다. 이들은 정신적 위자료 100만원을 지급하라는 판결을 받아들었다.

이번 사안은 사이트 접속차단의 문제로 불거졌지만, 근원적으로는 표현의 자유와 연관된 문제다. 해킹을 막겠다고 금결원이 만든 ‘금융앱스토어’가 전시행정의 산물이자 오히려 피싱의 위험을 키울 수 있다는 문제제기를 합법적인 패러디로 구현해 낸 것이 ‘금융얩스토어’다. 정부정책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은 기본적으로 지켜져야 할 표현의 자유이자, 다양하고 건강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기초와 같다. 금결원이 이 패러디 사이트를 KISA에 신고한 저의가 무엇인지는 알 수 없으되, 분명한 것은 정부정책에 대한 비판을 표현할 합리적 수단의 하나인 인터넷 저작물을 차단할 근거 중의 하나로 정보통신망법이 악용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이다. 접속차단이라는 행정심의를 내리기 위해서는 엄격한 주의의무가 전제돼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을 환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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