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수명이 길어지면서 은퇴 후 노후생활에 대한 불안감은 가중되고 있지만, 주택마련과 이로 인한 부채 그리고 자녀 사교육비 때문에 노후자금 마련은 여전히 뒷전인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생명 은퇴연구소가 지난 연말부터 올초까지 서울 및 5대 광역시에 살고 있는 비은퇴자 1782명을 대상으로 은퇴준비를 조사해 최근 발표한 ‘은퇴백서’에 따르면 20~30대는 주택자금 등 목돈마련, 40~50대는 자녀교육비 지출로 노후자금을 준비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30~40대의 경우는 부채상환 자금이 가장 급했다. 아직 은퇴하지 않은 60대만이 노후자금 마련을 지출 1순위로 뽑았을 뿐이다. 또 은퇴준비를 시작하는 적절한 시점을 묻는 질문에는 ‘취업 직후’ ‘자녀교육 후’ ‘결혼 직후’ ‘집장만 후’ 순으로 응답률이 높았다.

응답자의 연령대별 지출 우선순위는 일반 사람들 라이프사이클과 차이가 없다. 20~30대의 경우 학교 졸업하고 직장생활하고 결혼을 준비하는 시기다. 때문에 결혼자금이나 전세자금 등의 목돈이 우선 필요하다. 무리해서 빚을 내 아파트를 구입했다면 30~40대에 지출이 가장 많은 항목은 부채상환이 될 것이다. 아이들이 커가는 40~50대에게는 이들의 교육비 지출이 불가피하다. 그러다 보면 제대로 준비한 것 없이 어느새 은퇴시점이 다가오고 이와 맞물려 자녀들 결혼자금까지 걱정하게 된다. 차이는 다소 있겠으나 사람은 누구나 비슷한 이런 라이프사이클을 갖는다.

보험연구원 설문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노후에 가장 불안하다고 느끼는 부문은 건강(47.8%)과 경제적 위험(45.3%)이었다. 나이들어 경제적으로 궁색해지기 싫어 취업 직후부터 ‘연금이다, 펀드다’ 여러 금융상품에 가입하려 하지만, 실상 지출 때문에 노후자금 마련은 으레 뒷전인 게 엄연한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번 은퇴백서에서도 피부로 느끼기 전까지는 노후자금을 위한 저축은 뒤로 미뤄놓는 경향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무엇보다 은퇴 후 생활에 대한 막연함이 문제다. 우리나라 비은퇴자 10명 가운데 7명은 은퇴 후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 계산해 본적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노후소득에 대한 관심은 높았지만, 실행 첫 단계인 ‘계획’은 상당히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비은퇴 가구는 은퇴 후 생활을 위해 최소 평균 월 211만원, 여유자금으로 평균 월 319만원이 필요하다고 했다. 적지 않은 돈이기 때문에 길게 보고 먼저 준비하는 게 현명하다. 막연함을 떨치고 어느 시점에 어느 만큼의 자금이 필요한지 그리고 어느정도 저축을 해야 궁색하지 않은 노후생활을 할 수 있을지 계산기부터 두드려보자. 그러면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부채, 무리한 사교육비가 좀 줄어들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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