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근로자들이 쓰는 정수기가 고장났습니다. 이걸 고쳐달라고 현장의 반장, 과장으로 이어지는 공식적 ‘라인’을 밟으면 부지하세월입니다. 그런데 노동조합 임원이 총무부 간부에게 전화 한 통 넣어주면 득달같이 달려와 고쳐줍니다. 태생적 문제이긴 하지만, 우리나라 노조는 이렇게 ‘민원처리’ 성격이 참 강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일에 신경을 써줬으면 좋겠는데 말이죠…”

노무법인 사람과사람 대표인 박현진 공인노무사의 지적이다. 인천 구월동 중부지방고용노동청 인근의 사무실에서 만난 박 대표는 현장의 업무체계와 같은 ‘공식적인 라인’을 든든하게 세우는 것이 노무의 출발점이라고 강조한다.

노무법인 사람과사람 박현진 대표   ©중기이코노미

“노조 간부의 마음만 사면 노무 문제가 만사형통 풀릴 것으로 믿는 사업주들이 의외로 많습니다. 사실 노조보다는 현장의 반장·과장의 목소리를 듣고 권한과 책임도 더 얹어주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공식적이고 정상적인 원칙과 절차가 흔들림 없이 고안되고 작동돼야 근로자들은 회사와 ‘함께 간다’는 의식을 느낄 수 있게 되고, 회사는 ‘노조’가 아닌 ‘근로자’들과 행복한 관계맺기를 시도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 노조의 역할은?

“노조는 노사 공생이라는 큰 그림을 그려야 합니다. 사업주를 포함한 경영진이 보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에 천착하고, 여기에 기반해 더 나은 일터와 생산성 높은 조직을 구축하도록 고민하고 조언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노사정 균형 갖춘 거버넌스형 노무

박현진 대표에게는 노사정 3박자를 아우르는 거버넌스형 노무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하나은행 통합 이전 서울은행에서는 노조활동을, 노동일보와 노사저널에서는 언론인 역할을, 노사발전재단에서는 고용차별 구제와 개선을 주도하는 역할을 했다. 경력의 스펙트럼이 공인노무사로서는 더 바랄나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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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현진 대표에게는 노사정 3박자를 아우르는 거버넌스형 노무 전문가라는 꼬리표가 붙는다.   ©중기이코노미

고객사에서 노무법인의 업무 파트너가 되는 노무부서 담당자들에게 쓴소리를 해 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특히 노무부서 관리자들에게는 ‘사장님 마인드’를 버리라고 조언합니다. 사업주 입장을 미리 읽고 좋아할만한 제안만 해서는 곤란하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무조건 ‘임금인상 불가’ 의견만 낼 것이 아니라  임금인상에 상응하는 생산성 향상방안을 함께 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업주에게는 ‘다름을 인정하라’고 조언한다. 무턱대고 ‘가족끼리…’ 논리로 눙치거나, 사업주가 근로자에게 ‘시혜’ 베풀 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것은 피해야 할 영순위다. 기본적으로 노무는 분배의 문제이기 때문에 다름에서 오는 갈등은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줄 것은 주고 받을 것은 받되, 그 위에서 동반자 관계를 세우라는 것이다.

“동반자 관계의 핵심은 직원들의 자발성입니다. 사업주에게 수직적인 종속성을 느껴서가 아니라, 내 직장의 생존이 나의 생존과 직결된다는 것을 주체적으로 인식하는 데서 출발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며 노동의 질과 양이 개선되는 것이고, 또 유사시 임금반납이나 동결과 같은 결정들도 내릴 수 있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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