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짜장면 3개하고요…. 반포대로 ○○입니다”

“반포대교요? 거긴 멀어서 배달 안돼요”

“반포대교 아니고 반포대로인데요”

“아 그래요? 번지수가 어떻게 되는데요?”

음식주문을 하면서 적잖이 주고 받게 되는 대화다. 지번주소가 도로명주소로 바뀐지 3년이 넘었지만 아직 실생활에서는 도로명주소가 이처럼 낯설다. 정부는 지난 2011년 7월29일 도로명주소를 고시하고, 기존 지번주소와 함께 사용하다 올해부터 새 주소 체계를 본격 시행했다. 당초 2012년 시행 계획이었지만 도로명주소에 대한 홍보가 덜 됐다고 판단, 2년 유예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로명주소는 정착되지 못했다.

도로명주소는 도로를 중심으로 주택과 건물에 순차적으로 번호를 부여하는 주소체계다. 지번주소와 시군구 및 읍면까지는 같지만 그 뒤는 도로명과 건물번호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아예 지번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토지대장이나 등기부 등 부동산 관련 문서에서는 소유권을 보호하기 위해 지번을 사용하고 있다. 이를 제외한 공문서부터 주민등록증까지 일상생활에서 사용되는 주소는 도로명주소로 변경됐다.

하지만 도로명주소는 익숙해 지기도 전에 바뀌는 경우가 잦아지고 있다. 최근 싱크홀 논란 등으로 서울 잠실 석촌호수의 안전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자 ‘석촌호수로’라는 도로명주소를 쓰는 일부 주민들이 주소를 바꾸려고 한다는 보도다. ‘석촌호수로’가 싱크홀 등을 연상시키면서 아파트 자산가치가 떨어질 것을 염려한다는 얘기다. 앞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주택가 도로명주소는 원래 ‘남부순환로’였지만 “강남 분위기가 아니다”는 불만이 나오면서 ‘삼성로’로 바뀌었다.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주택가 도로명도 ‘야탑남로’였지만 주민들의 이의제기로 ‘판교로’로 교체되기도 했다.

안전행정부에 따르면 최근 3년간 전국에서 이처럼 도로명주소가 바뀐 곳이 206건에 이른다. 전면 시행한 올해 들어서도 8월까지 47곳이 바뀌었다. 아파트 가격이 떨어질까 우려돼서 또는 부정적인 느낌이 싫어서가 대부분인 것으로 나타났다. 주소가 사는 곳 자체를 의미하고 그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바꾸고 싶어하는 주민들 입장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익숙해질만하면 변경하는 것도 도로명주소 정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아직도 국민 대다수가 실생활에서 지번주소를 쓰고 있다는 점이다. 전면 사용 6개월을 맞아 안전행정부가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실생활에서 도로명주소를 사용해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59.3%에 그쳤다. 택배나 우편물 등을 보낼 때가 74.2%로 가장 많았지만 전입신고 등 민원 업무 48.8%, 온라인쇼핑몰 주문 47.5%로 절반도 안됐다. 특히 음식 등 배달 분야는 21.3%에 불과했다.

100년이 넘게 써온 지번주소를 생소하고 낯선 도로명주소로 바꾸기엔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정부는 도로명주소를 알리는데 4000억원이 넘는 홍보예산을 썼다. 그러나 국민들이 실생활에서 도로명주소를 쓸 수 있도록 제대로 된 교육과 홍보에는 소홀했다. 음식 배달 등에서 여전히 지번주소가 선호되고 있다는 점이 이를 방증한다. 정보의 일관성과 예측가능성이 떨어지는 등 문제점이 많은 지번주소를 버리고 이를 보완할 수 있는 도로명주소로 바꾼 것은 공감하지만 이를 정착시켜 나가는 정부의 추진방법은 미숙함을 드러낸 것이다.

<저작권자 ⓒ 중기이코노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