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는 갤러리와 작가 사이에 매매를 위탁하기 위해 체결하는 계약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일반적으로 갤러리는 작가와 별도로 특정 계약을 맺을 수도 있지만, 대부분 이미 표준으로 만들어진 계약서에 날짜 정도만 수정해 계약하곤 합니다. 그 명칭이나 형태 또는 범위에 상관없이 계약의 한쪽 당사자가 여러 명의 상대방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정한 형식으로 미리 마련한 계약은 약관이라고 하는데, 갤러리와 작가가 체결할 계약서는 주로 약관이 되며, 이는 약관의 규제에 관한 법률의 적용을 받습니다.

줄여서 약관법이라고 하는 이 법에 따라 갤러리는 약관의 작성 및 설명 시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쉽게 알 수 있도록 한글로 작성하고, 표준화·체계화된 용어를 사용하며, 약관의 중요한 내용을 부호, 색채, 굵고 큰 문자 등으로 명확하게 표시해 알아보기 쉽게 약관을 작성하여야 하며, 고객에게 약관의 내용을 계약의 종류에 따라 일반적으로 예상되는 방법으로 분명하게 밝히고, 고객이 요구할 경우 그 약관의 사본을 고객에게 내주어 고객이 약관의 내용을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또한 갤러리는 약관에 정해져 있는 중요한 내용을 고객이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해야 합니다. 만약 갤러리가 위와 같이 하지 않는 경우 작가에게 해당 약관을 계약의 내용으로 주장할 수 없습니다.(제3조)

계약 시 권장 내용

사실 갤러리와의 계약이 작가의 작품 활동에 미치는 영향은 큽니다. 잦은 분쟁 중 계약 해지 시, 갤러리가 작가에게 수년간의 지원금을 반환하라는 요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러한 분쟁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갤러리와 작가 간 계약할 때 ①판매할 작품의 종류, 화랑의 권한의 지역적 범위, 계약존속기간 등 화랑의 권한 범위 ②전속계약 여부:당해 화랑의 독점판매 여부 ③수수료:미국 33-50%, 한국 약 50% 등으로 다양하지만 자율적으로 정하면 됩니다. ④보관, 보험, 광고, 전시, 카탈로그 작성, 액자, 운송의 비용 부담자 ⑤기타 계산에 관한 조항, 당사자 사망 시 작품 처리 방법 ⑥작품 판매 촉진을 위한 화랑 측 노력 수준 등을 담고 있는 것이 좋습니다.

이는 법에서 정한 것은 아니고, 자주 일어나는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권장되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계약을 체결하면, 미술작품을 갤러리에 보관 및 판매할 경우 갤러리는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의무로서 작품을 보관 및 판매할 책임을 집니다. 그 예로 갤러리는 위탁자(작가/소유자)의 요구가 있을 경우 위탁매매 업무처리의 현황을 보고해야 하고, 업무 종료 시에도 지체없이 전말을 보고할 의무를 부담합니다. 즉 누구에게 판매했는지 성명(상호), 주소, 연락처 등을 정확히 보고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의무는 갤러리가 수년간 공들여 마련한 ‘판매망’이라는 영업비밀과 충돌할 수도 있어서 ‘판매자의 개인신상’을 작가에게 공개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위탁매매의 특성과 관행

그렇다면 다시한번 ‘위탁매매’의 특성을 살펴보겠습니다. 상법상의 위탁매매는 명의와 계산의 분리, 즉 매매의 법률적 형식과 경제적 효과가 분리된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즉 위탁매매는 위탁매매인이 자기의 명의로 타인(위탁자)의 계산으로 물건 등의 매매를 영업으로 하는 것을 말합니다. 위탁매매에서는 수탁자는 대외적으로 자신이 매매의 당사자가 되지만 위탁자의 계산으로 매매를 행하는 것이므로, 위탁자가 판매상품에 대한 소유권과 거래에 따른 위험의 ‘일체’를 부담하고 수탁자는 위탁자의 계산으로 행한 판매의 대가로 위탁자로부터 단순히 ‘수수료’를 받는 지위에 있게 되는 것이죠. 따라서 상법상 위탁매매라고 본다면 갤러리는 위탁자의 지시에 따를 의무가 있고(상108) 통지의무, 계산서 제출의무가 있습니다.(상104)

그런데 과연 우리나라 갤러리 매매가 통상 작가의 지시를 따르고, 작가에게 판매자에 관한 정보를 통지하는가요? 사실상은 그렇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는 ‘상법상 위탁매매’라기보다는 유럽식 ‘매매’에 가까운 것 같습니다. 작가가 갤러리에게 ‘매매를 위탁’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을 아예 판매’하고, 갤러리는 자신의 물건처럼 판매만 하고 대금의 반절만 작가에게 전달하면 그만인 경우가 많죠. 이러한 관행은 세 가지로 해석됩니다.

첫째 사실은 위탁매매가 아니라고 보는 것입니다. 즉 화랑이 작품을 구매하고 되파는 것(유럽식)인지도 모릅니다. (판매 대금만을 판매 시점의 금액의 50%로 약정한 것) 매매인지 위탁매매인지는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위탁매매란 자기의 명의로 타인의 계산에 의하여 물품을 매수 또는 매도하고 보수를 받는 것으로서 명의와 계산의 분리를 본질로 하고, 어떠한 계약이 일반의 매매계약인지 위탁매매계약인지는 계약의 명칭 또는 형식적인 문언을 떠나 그 실질을 중시하여 판단하여야 한다고 합니다.(대법원 2011.7.14. 선고 2011다31645 판결)

둘째, 위탁매매이기는 하지만, 암묵적으로 지시에 따를 의무 및 통지 의무를 배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상법 104조의 통지의무는 강행규정이 아니므로 이러한 의무는 명시 또는 묵시의 특약에 의하여 경감, 면제할 수 있습니다.

묵시의 특약은 언제 인정되는 것일까요? 묵시적 계약이란 구두나 문서로서 명시적 약속(명시적 계약)을 하지 않았지만, 당사자들의 행동(conduct)으로부터 합리적으로 또는 정의의 관점에 따라 판단할 때 합의의 존재가 추론되는 계약을 말합니다.

당사자들의 행동 및 그 주위 사정에 비추어 판단할 때 명시적 계약의 경우에서와 동일한 요소들-의사의 합치(청약과 승낙), 계약체결 권한 등-의 존재가 인정되고, 그 결과 당사자들이 구속받기를 원했다고 판단하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여겨지는 경우에만 사실상의 묵시적 계약이 성립합니다.

민법도 청약자의 의사표시나 관습에 의하여 승낙의 통지가 필요하지 아니한 경우에는 계약은 승낙의 의사표시로 인정되는 사실이 있는 때에 성립한다고 합니다.(민 제532조 의사실현에 의한 계약성립) 상법주석서에 따르면 위임인이 부단히 수임인을 감독하거나 또 증거서류

를 위임인이 보관하고 있는 경우와 같은 때는 보고의무 면제의 묵시의 합의가 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실인 관습’이 존재함을 주장해야 합니다. 사실인 관습은 사회의 관행에 의하여 발생한 사회생활규범인 점에서 관습법과 같으나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서 승인된 정도에 이르지 않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관습이 사회의 법적 확신이나 법적 인식에 의하여 법적 규범으로까지 승인되었는지의 여부를 가리기는 더욱 어려운 일이므로, 반드시 당사자가 이를 주장입증하고, 법원이 판단하게 됩니다(대법원 1983. 6. 14. 선고 80다3231 판결). 사실인 관습이 주장되어 법원에서 인정한 사례로는 ‘하자담보책임’이라는 임의규정이 있지만, 임치계약 관행상 “임치계약에 있어 임치인이 출고 시에 이의 없이 수치물을 반환 받았으면 책임이 면제된다는 관행”입니다(대판 1967. 12. 18 67다2093). 그러나 아직 미술품 위탁매매에서 이러한 관행이 인정되는 여부에 대한 판례는 없어, 법원의 판단을 받아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복잡함을 피하려면, 처음부터 계약서에 “고객에 관한 정보는 작가에게 제공하지 않는다”라고 명백하게 써 놓고, 작가에게 잘 설명한 후 계약을 체결하면 별로 큰 문제가 없겠지요! [글=LG전자 개인정보 Compliance Task 김별다비 변호사, curatorstu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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