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유마을 작은도서관의 이재권 관장   ©중기이코노미

전형적인 재래시장 특유의 부산스러움이 느껴지지만 시장 안 곳곳에 도로명주소가 표기돼 있어 길 찾기는 어렵지 않다. 시장 한복판에는 많은 사람이 지나는 가게들 사이에 ‘삶의 기술과 지혜’라는 제목의 인문학 강좌를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는 모습은 이색적이다.

이 현수막에는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과 함께 하는 인문학 강좌라는 소개글이 쓰여 있다. 지난해 11월까지 수유시장 한가운데에서 인문학 강좌가 진행됐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수유 재래시장 상인회’라는 간판이 있는 건물 2층으로 올라가면, 상인회 사무실 앞 조그마한 공간 둘레에 책이 빼곡히 꽂혀있다. 서점처럼 좁은 공간에 책을 빽빽하게 채워놓은 모습은 아니다. 그저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만든 사랑방이라는 느낌이다.

시끌벅적한 삶의 공간, 수유 시장 한가운데에 있는 조그만 도서관이 바로 수유마을 작은도서관이다.

“이 공간은 원래 상인회 창고로 쓰이던 곳입니다. 누군가가 툭 던진 ‘도서관 만들어볼까’ 하는 얘기에 만들게 됐죠”

작은 도서관의 이재권 관장은 이곳 도서관의 유래를 설명했다. 그저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보자는 작은 아이디어 하나에 상인회원들이 힘을 합쳐 도서관을 만들게 됐다는 간단한 설명이었다. 마침내 2010년 12월 문을 연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은 어느새 창립 3주년이 지나며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수유 재래시장 한 가운데 위치한 작은도서관의 모습   ©중기이코노미

시작은 거창하지 않았지만 막상 도서관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제법 거창한 일이 됐다. 처음에는 상인회원들이 갖고 있는 책들을 모았고,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비를 충당하고 책을 구입하기도 했다. 도서관의 이름이 외부로 알려지면서 명사들이 책을 기증하기도 했다.

도서관이 알려지면서 여러 방면에서 책을 기증받을 수 있었다고 한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기증한 책도 한켠에 놓여있다. 지금은 책을 충분히 갖춰 기증을 받기보다 자체 예산으로 책을 구매하고 있다. 책의 종류는 다양해 보였다. 소설류, 경제경영 등 자기개발서, 역사와 철학 등 인문학자료들이 책장을 가득 채웠다. 동화책 등 어린이 서적을 주로 비치하는 어린이도서관같은 컨셉형 도서관이 아니라, 지역에 위치한 다양한 세대들의 책 욕심을 충족시켜줄 수 있는 작은 도서관이다.

이 관장은 “처음에는 자기개발서, 경영안내서나 경제관련 책들을 많이들 볼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막상 사람들이 읽는 책들은 인문학이나 소설류가 가장 많았다고 한다.

작은도서관이 개설한 인터넷 까페(http://cafe.naver.com/suyulibrary)에는 도서관이 보유한 도서목록이 정리돼 있다. 필요한 책을 요청할 수도 있고, 도서관에 대한 후원이나 기증도 이곳을 통해 할 수 있다.

도서관은 주로 인근 지역주민들이 많이 찾는 공간이 됐다. 상인들은 생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도서관을 수시로 찾기 힘들지만, 지역주민들이 발길을 끄는 공간이 된 것은 시장에 큰 이익이 되고 있다고 한다.

작은 도서관은 다양한 문화행사를 개최해 호평을 받고 있기도 하다. 매년 한번씩 여는 인문학 강좌는 수개월씩 진행된다. 이 관장은 “지난해 인문학 강좌는 서양철학이 주제였는데, 어려운 주제였지만 많은 참여가 있었다”며 “올해에는 동양철학을 주제로 할 것”이라고 한다.

“시장이 스스로 노력하고 변해야” 

  

도서관을 만들게 된 계기를 들으면서도 ‘왜 도서관일까?’라는 질문은 아직 남아 있었다. 이 관장은 “상인들은 무식하고 돈만 밝힌다는 생각이 싫기도 했다”며 시장에서 즐길 수 있는 거리, 사람들의 발길을 잡는 공간이 필요했다는 고민을 밝혔다.

도서관장을 맡고 있지만 이 관장은 책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것은 아니다. 경북 안동이 고향인 이 관장은 고등학교를 마친 뒤 서울로 올라야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살다 IMF 전후로 많은 빚이 생겼다. 부모님의 건강이 악화되자 수유시장에 얻어둔 부모님 가게를 이 관장이 운영하게 됐다고 한다. 가게가 생긴지는 20년이 넘었다.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 이재권 관장은 “시장이 먼저 바뀌어야 하고, 문화를 시장에 접목해야 한다”고 말했다.   ©중기이코노미

처음에는 경기도 안 좋고 어려움이 많아서 실패를 겪기도 했다. 10여년 전부터 수산물을 취급하기 시작하면서 생계가 나아졌다. 일본에서 방사능 유출사고가 터진 후 한때 수산물 구입이 크게 줄어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국산 수산물은 괜찮다는 홍보가 많이 되면서 극복했다.  

최근에는 대형마트나 다양한 유통망이 생기면서 재래시장이 많은 어려움을 겪자, 정부가 나서서 재래시장을 대상으로 다양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관장은 “시장이 먼저 바뀌어야 한다”며 적극적인 해법을 제시했다.

“시장이 어렵다 어렵다 하면서 지원해달라고 기다리기만 하면 안됩니다. 지원에 의존하다 끊기면 살 수가 없어져요. 자생력을 갖춰야 합니다”라고 말했다. 스스로 연구하고 공부해 변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관장은 이를 위해 자비를 들여 일본의 유명 재래시장을 여러차례 방문하기도 했다. 이런 노력을 기울인 결과 많은 깨달음을 얻었다며 “정부에서 해외시장을 방문시켜주는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운영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기는 힘들다. 좀 더 확대돼야 한다”고 말했다.

미래를 내다보고 발전하기 위해 노력하는 이 관장이 보기에 시장이 최근 젊은 세대들로부터 멀어지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요즘 젊은 세대들은 대학에서 문화의 혜택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시장도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안 그러면 젊은 층에게 시장이 소외된다. 이런 요구를 받아주는 것이 시장이 해야 할 것”이라며 시장이 앞으로 나가야 할 방향을 지목했다. 바로 “문화를 시장에 접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수유마을 작은 도서관 내부   ©중기이코노미

수유 재래시장에는 작은 도서관 외에도 다양한 동아리 모임공간이 있다. 상인회와 지역주민들이 함께 운영하는 다양한 문화공간이 있다. 영화동아리, 서예동아리 등 다양한 모임이 주민들과 상인들의 참여로 운영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관장은 문화공간을 더욱 늘려가고 싶다는 소망을 밝혔다. 어린이 도서관을 만들면 좋겠다는 구상도 갖고 있다.

어린 시절 시장의 모습을 떠올려 본다. 시장은 말그대로 상행위가 이뤄지는 경제공간이었지만, 세대를 넘어서 모든 사람들에게 맛있는 먹거리와 재미있는 놀이거리가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5일장이 서던 시골 시장의 이런 문화는 도심 속 재래시장에도 이어져왔다. 생활패턴과 문화가 변화하면서 어느새 재래시장과 도시민들의 삶이 멀어져 버렸다. 이런 시대에 수유시장처럼 지역 사회의 문화공간이라는 모습을 되찾는 시장은 이색적이지만, 충분히 성공할 수 있는 길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수유시장과 작은 도서관에서 느낄 수 있는 문화의 향기는 미래 재래시장의 모습이 될 수 있을지, 관심갖고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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