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환경 청소사업을 하는 사회적기업 함께일하는세상㈜은 2년 전부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기 위해 준비를 해오고 있다. 이 회사 이철종 대표는 2000년대 초반부터 협동조합 운동을 해올 만큼 전환에 적극적이었으나 막상 갖가지 문제가 발목을 잡자 시름이 깊어졌다.

“우리회사는 2003년에 설립된 사회적기업입니다. 그런데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하게 되면 지난 10년간의 업력을 인정받을 수 없게 됩니다. 공공기관 입찰계약을 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 실적이 이어지지 못하면 다시 제로 상태에서 시작해야만 하는 상황입니다” 이철종 대표의 말이다.

지난 28일 서울시 협동조합 상담지원센터가 주최한 ‘협동조합제도 개선 제3차 토론회’에서는 협동조합 전환과정에서의 제도적 문제에 대한 성토가 이어졌다. 주식회사나 유한책임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했거나 전환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이 첫 손에 꼽는 문제는 업력 인정 부분이다.

협동조합기본법 제60조의2(법인등의 조직변경)와 제105조의2(협동조합, 비영리사단법인 및 법인등의 조직변경)에 따르면 영리법인과 비영리법인은 소속 구성원 전원의 동의를 거쳐 협동조합으로 전환할 수 있으며 “기존의 법인 등과 조직이 변경된 협동조합은 권리·의무 관계에서는 같은 법인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존 법인의 업력이나 실적 승계에 관한 세부 규정은 없어 조직변경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 실질적으론 업무가 이어지나 제도적으론 승계 인정을 받을 수 없는 문제다.

특히 공공시장 입찰을 주로 하는 기업의 경우 기존 업력을 인정받을 수 없는 점이 치명적이다. 이 대표는 “실적 승계가 되지 않으면 입찰에서 실적 점수를 채울 수 없어 스타트업과 다름없는 상태가 된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협동조합으로 조직을 전환해 입찰시장에 뛰어든다는 건 계란으로 바위치기”라고 토로했다.

다른 협동조합들도 같은 어려움을 호소했다. “연매출 8~10억원을 올리다 지난해 5월에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막상 입찰사업을 하려고 보니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떨어지고 있다. 협동조합법을 만들어 놓기만 하면 무얼 하나. 일을 하려면 진입을 시켜줘야 하는데 진입조차 할 수 없다”고 또 다른 협동조합의 이사장이 말하자, 다른 한쪽에서도 “다른 곳에서는 수익을 올렸지만, 공공구매 시장에서는 업력 승계 문제 때문에 1원 한 푼 못 얻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국에 400여 가맹점을 가진 프랜차이즈 기업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한 ‘해피브릿지’도 이 같은 문제를 겪었다. 해피브릿지 양수일 평의회의장은 “협동조합으로 전환하면서 가장 큰 문제로 다가왔던 게 사업자등록번호 변경 문제였다. 그동안 해왔던 업력이 다 사라지는 것이라 한 달에 걸쳐 담당 공무원을 설득한 끝에 사업자번호는 유지할 수 있었다. 다만 법인등록번호는 바뀌었다”고 말했다.

기존 사업을 그대로 진행하되 법인격만 협동조합으로 변경한다면 예외규정을 통해 이전 업력을 인정해주는 것도 가능하다. 실제로 중소기업청에서는 정책자금 지원사업에서 법인격 전환 이전의 업력도 인정해주고 있다. 지난 8월 중기청이 낸 창업지원 공고의 자격 요건을 보면 개인사업자에서 법인사업자로 포괄 양도양수한 경우 개인사업자 사업개시일을 기준으로 삼고 있다. 법인격이 바뀌었다 할지라도 이전 업력을 인정한다는 이야기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 시 중소기업 신용보증 대출을 받을 수 없는 실질적인 문제도 있다. 함께일하는세상㈜의 연매출은 50억원 규모로 지금까지 신용보증대출을 받아왔으나,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변경을 하면 기업대출을 받기 어려워진다. 사회적협동조합이 갖는 비영리성 때문이다. 이 대표는 “비영리법인인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조직을 변경하면 기존 주거래은행과 신용보증재단을 통해 이뤄지는 대출에서 배제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이 같은 지적에 기획재정부 협동조합정책과 신인식 사무관은 “현장에서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몰랐는데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알게 됐다. 개선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했다.

이와 관련, 재단법인 동천 양동수 상임변호사는 “협동조합법은 협동조합의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일반 상법상 조직변경에 관한 규정을 그대로 인용해 보완이 필요한 부분이 있다”면서도 “협동조합으로 전환하고자 한다면 협동조합이 자신의 법인에게 맞는 옷인지 판단하는 것이 중요하다. 회사를 민주적으로 운영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고 싶다면 전환해야겠지만 영리를 우선적으로 추구한다면 주식회사로 남아있는 것이 낫다”고 조언했다.

토론회를 후원한 김우영 은평구청장은 “지배적 위치에 있는 기업은 규제가 있더라도 넘어설 수 있지만 협동조합이나 작은 기업들은 열정이 있어도 실적이 없다는 이유로 입찰 등에서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며 “좋은 싹이 피기도 전에 지지 않도록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