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 유럽여행을 갔을 때의 일이다.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날인 일요일, 독일 프랑크푸르트 최대 쇼핑거리인 ‘자일’에 갔다. 그동안 짐이 될까 쇼핑을 미뤄왔기 때문. 그런데 아뿔싸, 대형쇼핑몰 중 문을 연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 경비원을 붙잡고 물어보니 일요일에는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최근에야 알게된 사실인데 쇼핑을 할 수 없었던 건 독일의 ‘영업시간제한법’ 때문이었다. 1956년에 제정된 법으로, 공항이나 관광특구 등을 제외하면 모든 상점은 일요일과 공휴일에 폐점해야 한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월2회 의무휴업과 유사해보이지만 훨씬 규제 범위가 넓은 편. 한국은 매장면적 합계가 3000제곱미터 이상인, 점원의 도움없이 식품 및 생활용품을 판매하는 ‘대형마트’에 대해서만 규제하는 반면 독일은 모든 상점을 대상으로 한다.

흥미로운 부분은 규제의 이유다. 휴일 영업을 규제한다는 면에서 비슷한 제도처럼 보일지 모르나 규제 원인을 살펴보면 전혀 다른 양상이 발견된다. 우리나라는 중소상인과 골목상권 보호의 관점에서 규제를 시행중인 반면, 독일은 근로자의 행복추구권과 건강보호가 법의 취지다. 

최병규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학박사의 ‘유통산업발전과 독일 법제 및 한국 헌재 결정례 평석’ 논문에 수록된 독일의 영업시간제한법 제17조 3항에 따르면 독일은 예외적으로 휴일이나 일요일에 일을 시킬 경우 주중에 쉴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휴일 근로시간이 6시간 이상 지속될 경우에는 같은 주의 한 영업일 종일을 쉴 수 있도록 하는 등 근로자 휴식을 위해 구체적인 방안을 명시하고 있다.

노동자의 권익을 중시하는 프랑스 역시 근로자의 행복추구권과 건강보호를 위해 상점의 일요일 영업을 규제한다. 거주자 100만 이상의 도시를 제외하면 일요일에는 영업을 할 수 없다. 영업규제의 근거 법률은 노동법이다. 우리나라의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유통산업발전법에 의거한다. 같은 영업규제라도 다른 이유에서 시행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에서 대형마트 영업시간 및 의무휴업 규제가 시행된지도 2년 6개월이 흘렀다. 여전히 실효성을 두고 말이 많다. 소상공인 측에서는 당초 의도한 바대로 매출이 늘었다고 하고, 대형마트에 납품하는 중소업체들은 매출이 줄어 역차별이라 외치고, 소비자들은 불편을 호소한다. 

일요영업을 규제하는 국가는 많지만 소상공인과 골목상권 보호를 이유로 시행하는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헌법 123조에서도 밝히고 있듯 국가는 중소기업을 보호·육성해야 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보호의 방법이 대형마트 영업규제라는 방식으로 이뤄져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다. 애매모호한 영업규제로 사실상 대형마트에 가까운 이케아는 가구전문점으로 허가를 받아 규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대형마트 내에서 안경점을 하는 임대점포는 마트 안에 있다며 영업규제를 받고 있다.

2013년 한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2163시간으로 OECD 국가들 중 2위다. 과도한 업무에 짓눌려 있는 한국 근로자들을 위해 근로자 행복추구권과 건강보호의 관점에서 일요휴업을 접근해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대형마트뿐 아니라 모든 업종을 대상으로 하게 될 터다. 상사들 눈총에 칼퇴근은 고사하고 칼출근도 쉽지 않다는 한국의 근로자들, 일요일만이라도 쉼표를 달아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