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문학자인 충북대 문광훈 교수조차 “문학을 사랑하는 내게는 그리 내키지 않는, 그리고 그 때문에 조금 쓸쓸한 일이지만……문학과 회화의 위대함은 음악의 위대함에 비할 바는 아니지 않는가”라고 술회한 바 있다. 강변하지 않고 설명하지 않아도 저절로 드러나는 음악의 위대함, 그 감동과 위로에 대한 찬양이다.
엘 시스테마(El Sistema), 공식용어로는 ‘베네수엘라 국립 청년 및 유소년 오케스트라 시스템 육성재단(FESNOJIV)’은 녹음실이나 콘서트홀이 아닌 빈민가의 거리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음악을 빚어냈다. 1975년 아마추어 음악가이자 경제학자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카라카스의 빈민가 청소년 11명을 모아 출범시킨 엘 시스테마는 약 40년이 흐른 지금 270여 센터 25만여명이 가입된 조직으로 성장했다. 구스타보 두다멜, 에딕슨 루이즈 등 주류음악계를 이끄는 인재를 배출해낸 것은 물론 해외공연을 다니는 프로페셔널 오케스트라들을 여럿 조직해내기도 했다.
엘 시스테마가 ‘직업적 클래식 음악가’ 양성만을 목표로 했다면 적어도 지금과 같은 찬사를 듣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이 조직의 목표는 음악가 양성이 아닌 사회적 변화다. 마약과 폭력, 포르노와 총기가 난무하는 카라카스 빈민가의 청소년들에게 협동심·소속감·책임감의 가치를 가르치고 꿈과 목표의식을 심어주자는 것이다. 이곳을 거친 아이들은 음악가도 될 수 있지만, 정치인, 과학자, 의사도 될 수 있다. 자료에 의하면 현재 베네수엘라 최고의 국립 의과대학생 70％가 엘 시스테마 교육을 이수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음악이 가진 감동과 위로, 화합과 치유의 힘이 큰 동력이 됐을 것이다.
엘 시스테마는 정부와 민간기업, 음악가를 비롯한 전세계 개인들의 후원으로 지탱된다. 이를테면 더 나은 사회를 향한 국경없는 연대의 살아있는 모델인 셈이다. 모든 훌륭한 오케스트라가 그러하듯, 이들 후원자들은 각자 보이는, 혹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하게 자신이 담당한 소리를 낸다. 그 결과로 피어나는 천상의 화음은 아이들을 ‘피리부는 이의 벼랑’ 이 아닌 세상의 중심으로 인도한다. 이번 일요일 저녁, 엘 시스테마의 성공에 크게 기여한 토마스 클라모어가 고양시에서 경기필하모닉과 합을 맞춘다. 그의 손끝에서 피어날 관악기의 향연이 이 가을 벌써 얼어버린 우리들의 가슴을 따뜻하게 덥혀주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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