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문조사 결과가 늘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 표본이 많다고 그 결과물이 진실에 가까운 것도 아니다. 어떤 설문에는 시행자의 ‘의도’가 포함돼 있다. 실태를 알아보기 위해 실시하는 게 아니라 이미 결과를 잠정적으로 정해놓고 의견을 뒷받침하기 위해 설문을 이용하는 경우다. 기자들이 설문조사 결과를 보도할 때 신중해야 하는 이유다.

최근 전국경제인연합회가 소비자 8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형마트·SSM 의무휴업 효과 소비자 조사’ 결과 발표를 보니 의도적인 설문의 전형이라는 생각이 든다. 설문 문항도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가 전환돼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었고, 이를 풀어 쓴 보도자료 역시 입맛대로 가져다 쓴 흔적이 역력하다.

설문지 내용을 뜯어보자. 1번 문항은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쇼핑을 할 경우 어떤 대체 방안이 있는지’, 2번 문항은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로 인해 지난 1년간 전통시장 방문 횟수가 얼마나 증가했는지’를 묻고 있다. 2번 문항에서는 의무휴업 규제 후에도 전통시장 방문 횟수가 증가하지 않았다는 응답이 64.3%로 가장 많았다. ▲기존보다 1~2회 증가(23.1%) ▲3~4회 증가(8.8%) ▲5~6회 증가(2.3%) ▲7~8회 증가(0.5%) ▲9회 이상 증가(1%) 등 기존보다 증가했다는 답변도 35.7%가 있었다.

3번 문항은 ‘대형마트 휴무일에 전통시장을 이용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있다. 2번 문항에서 ‘9회 이상 증가’했다고 응답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모두 3번 문항에 답을 하도록 했다. 대형마트 휴업으로 지난 1년간 8번이나 전통시장을 이용했다고 응답한 사람에게까지 ‘이용하지 않느냐’고 물은 것이다. 

그러면서 전경련은 위생상태 불량, 교환 및 환불의 어려움, 카드 결제의 어려움 등 소비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통시장에 대한 불만사항을 친절하게 선택지로 제시했다. 전통시장을 이용했다는 사람에게 어떤 장점이 있었는지 답변할 수 있는 기회는 주지 않았다.

전경련의 설문의도가 빤히 보이는 것은 마지막에 제시된 ‘대형마트 의무휴업이 어떻게 전환됐으면 좋겠는가’라는 문항이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전환’을 이미 염두에 두고 던진 질문이다. 흥미로운 건 설문 결과다. ▲의무휴업 폐지 ▲공휴일 휴무를 주중 휴무로 전환 ▲월2회 휴무를 1회로 축소 ▲의무휴업 유지 ▲의무휴업 강화 등의 답변항목 가운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 것은 ‘현행 의무휴업을 유지해야 한다’(28.3%)는 응답이었다. 대형마트 휴업으로 불편함이 있기는 하나 골목상권 보호를 위해 유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으로 풀이할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이를 해석하는 전경련의 시선은 남달랐다. 이들은 ▲의무휴업 폐지(27.3%) ▲공휴일 휴무를 주중 휴무로 전환(21.7%) ▲월2회 휴무를 1회로 축소(12.5%) 등을 모두 합쳐 61.5%의 숫자를 만든 다음 대형마트 의무휴업제 폐지 의견을 강력히 피력했다. 해당 설문에 대한 전경련 보도자료의 부제목 중 하나는 ‘소비자 과반 이상, 대형마트 의무휴업 규제 폐지 또는 완화해야!’였다.

전경련이 내놓은 보도자료를 활용한 매체들 중 일부는 이 문구를 그대로 활용했다. 편의상 “소비자 10명 중 6명 ‘대형마트 의무휴업 폐지해야’”라고 제목을 딴 곳도 있었다. 분명 대형마트 의무휴업을 유지해야 한다는 답변이 가장 많았는데도 말이다. 전경련의 뭉뚱그리기 셈법을 그대로 쓰자면, 의무휴업을 폐지해야한다는 입장이 27.3%에 불과했으니 “소비자 10명 중 7명 의무휴업 제도 계속 시행해야”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같은 설문을 두고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전경련의 이번 설문은 문항 면에서나 결과 해석 면에서나 편파적이라는 의심을 지우기 어렵다. “대형마트 의무휴업은 실효성이 없으며 전통시장 활성화는 자체적인 경쟁력 확보에서 출발한다”는 그들의 주장은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그러하니 납득할 수 있다. 다만 800명을 대상으로 했다는 설문결과를 입맛대로 버무려 소비자 전체의 의견인양 호도하는 모습은 눈살이 찌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