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11일은 농업인의 날이기도 하고 가래떡데이이기도 하지만, 가장 유명한 것은 빼빼로데이다. 국가가 지정한 법정 기념일인 농업인의 날이 일개 기업의 마케팅 수단인 빼빼로데이에 밀려난다는 개탄을 접할 수 있는 하루였다. 사실은 빼빼로데이의 기원이 1990년대 초중반인 반면, 수차례 날짜를 바꾼 농업인의 날이 11월11일로 옮겨온 것은 1996년의 일이기 때문에 오히려 빼빼로데이가 ‘박힌 돌’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빼빼로데이 이후 수많은 ‘데이’들이 난립했고, 한국에서는 ‘데이 마케팅’이라는 조어까지 나왔다. 하지만 빼빼로데이만큼 성공적인 데이 마케팅이 없었다. 분명 성공한 빼빼로데이와 후발주자들 사이에는 뭔가 차이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된다. 수많은 경영학과 학생들이 이에 대한 연구를 하는 이유기도 하다.
빼빼로데이 보다 앞선 데이 마케팅으로는 발렌타인데이를 떠올릴 수 있다. 본래 성 발렌티노의 축일이었던 2월14일에는 서구에서 연인들간에 사랑을 고백하는 풍습이 있었다고 한다. 데이 마케팅이라는 단어에 앞서 ‘발렌타인 마케팅’이라는 마케팅 용어가 존재했던 이유다.
하지만 본격적인 데이 마케팅의 시작은 아무래도 화이트데이로 보는 것이 옳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의 풍습을 이용하되, 마케팅을 목적으로 특정한 날짜에 의미를 부여한 사건은 화이트데이가 시초이기 때문이다.
화이트데이의 기원 역시 명확하지는 않다. 다만 위키백과에는 1965년 일본의 마시멜로 제조업자가 이 날을 만들었다고 기록돼 있다. 당초 마시멜로데이라 부르다가 화이트데이로 이름이 바뀌었고, 남성이 여성에게 마시멜로나 화이트초콜릿, 사탕 등을 선물하는 날이 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한국과 일본, 중국 등지에서는 발렌타인데이와 대구를 이룬 듯한 화이트데이가 하나의 풍습처럼 자리잡고 있다.
빼빼로데이 역시 화이트데이와 마찬가지로 기원이 명확하지 않다. 인터넷에서는 빼빼로데이의 기원을 1996년이라고 보는 글도 있지만, 롯데제과가 만든 빼빼로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1994년을 시작 시점으로 명시하고 있다. 부산지역 여중고생들 사이에서 ‘키크고 날씬하게 예뻐지자’는 의미로 주고받기 시작했다는 구체적인 얘기를 보면, 빼빼로데이의 기원에 대한 의심이 사라질 지경이다.
그러나 개개인의 기억이나 진술은 이 설명과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다. 엔하위키 미러의 빼빼로데이 항목을 보면 “1993년에 이미 서울에서도 빼빼로데이를 챙겼다”는 말이 달려있다. 기원이 불분명하다는 의미인데, 이 설명이 오히려 빼빼로데이의 자연발생설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일부 학생들의 문화를 포착한 롯데제과가 빠르게 ‘자연발생적’인 양 빼빼로데이의 확산을 주도했다는 또다른 설과 배치되는 설명이다.
핵심은 ‘자연발생적’이라는데 있다. 누가 제안했고, 기원은 무엇이며, 어떤 의미가 있다는 등의 내용이 다소 모호한 것이 오히려 자연스러워 보이고 자발적인 참여를 끌어내는데도 적합하다는 것은 수많은 인위적 데이 마케팅의 실패가 반증한다. 현재 한국에는 매월 14일에 각종 이름의 데이가 정해져있다. 그 중 솔로들이 짜장면을 먹는 4월14일 짜장면데이처럼 자연발생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없지 않으나, 대부분 특정 상품을 이름에 걸고 구매을 유도한다는 점에서 실패를 거듭하고 있다. 아이스버킷 챌린지가 전세계로 퍼져나갔듯이, 데이 마케팅도 SNS의 전파력과 결합한다면 새로운 마케팅의 시작이 될 수 있다. 성공사례와 실패사례가 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으니, 먼저 그 길을 가는 기업이 성공의 열매를 차지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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