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은 20일, 국내 대기업집단의 상표권 관리실태가 심각하다며 ‘상표심사지침’을 발표하고 비정상적 상표관행을 개선해 나가기로 했다.

이에 따르면 롯데제과, 롯데호텔, 롯데푸드 등 여러 계열사를 가진 롯데그룹이 기존 사업과 전혀 다른 ‘롯데항공’을 설립할 경우,  ‘롯데항공’은 상표등록을 받을 수 없게 된다. 그룹 계열사 상표권을 집중관리하는 지주회사 이름으로 상표가 출원되지 않았다는 전제 하에서다.

그러나 각 계열사가 종전에 각자의 명의로 등록받아 사용하고 있던 롯데제과나 롯데푸드 같은 상표와 동일성이 인정되는 상표, 예를 들면 ‘롯데제과 머핀’이나 ‘롯데푸드 치킨’ 같은 것을 출원하는 경우라면, 법적 안정성을 고려해 등록을 받아주기로 했다.

특허청은 상표법상 그룹 계열사 간이라도 법인격이 다르면 상표법상 타인에 해당한다는 원칙을 분명히 했다. 유사한 업종에 유사한 상표를 사용할 수 없다는 원칙도 밝혔다. 그러나 현재 국내의 다수 대기업 계열사들이 그룹 명칭을 포함한 상표를 사용하고 있어 문제의 소지가 될 수 있다는 것이 특허청의 우려다. 지주회사에서 상표권을 등록하고 계열사에 사용허가를 주는 대부분의 경우에는 괜찮지만, 계열사가 직접 그룹 명칭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하고 있는 경우에는 문제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6개 그룹이 ‘현대’ 명칭…롯데그룹과 롯데관광은?

범현대그룹 계열사 현황.<자료=특허청>

수십개의 계열사가 그룹 명칭에 대한 상표권을 획득해 사용하는 경우 장기적으로는 브랜드 및 상표의 가치가 하락할 수 있다. 10개의 범현대그룹(자동차그룹·중공업그룹·상선계열그룹·백화점그룹·해상화재보험그룹·산업개발그룹 등) 중 ‘현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은 총 6개로 이들의 100여개 계열사가 이 상표를 사용하고 있다. 이런 추세로 계속 나가다 보면 이 상표는 아무나 써도 되는 것이 되고 결국 브랜드 가치 희석화로 치명적인 손상이 올 수 있다는 것이 특허청의 판단이다.

특허청은 롯데그룹 역시 74개 계열사 중 12개 계열사에 상표권이 분산되는 등 상표관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밝혔다. 일본에서 상표권을 일원화해 관리하고 있는 사례와 대비된다.

자회사가 직접 그룹명칭에 대한 상표권을 보유할 경우 인수합병 등으로 계열 관계가 변경된 이후에도 자회사가 그룹명칭을 계속 상표로 사용할 수 있어 소비자들의 혼동이 발생할 수도 있다. 대기업집단의 계열사로 인식하고 소비자들이 선택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관련이 없는 회사일 수도 있다.

롯데는 신격호 회장이 지난 1978년 매제인 김기병 롯데관광 회장에게 롯데그룹의 심볼마크 사용을 허락한 바 있다. 이후 2000년대 후반 롯데그룹이 ‘롯데JTB’라는 여행사를 설립하면서 불편한 관계를 갖기도 했다. 롯데관광이 용산 국제업무단지 건에서 고배를 마시며 롯데그룹 계열사의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다.

특허청은 이에 따라 대기업 상표심사지침을 만든다고 밝혔다. 앞으로 대기업 그룹명칭이 들어간 상표는 하나의 상표관리회사 또는 지주회사가 일괄적으로 관리하면서 출원해야만 등록받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것이다.

박성준 상표디자인심사국장은 “삼성, SK, KT, LG, 신세계, GS 등 많은 대기업집단들은 이미 상표권 일원화가 완료된 상태지만 아직도 일부 그룹들의 경우 상표권 일원화를 위한 결단이 필요한 실정이며, 특히 재벌그룹의 2세, 3세 경영과 함께 지배구조가 복잡해지는 가운데 지금과 같은 대기업 상표관리 관행이 지속된다면 문제가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 인식하에 이러한 정책적 판단”을 내리게 됐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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