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이 국내 제강3사를 공정위에 제소하기로 했다. 사진은 현대제철 서울사무소가 위치한 현대기아차 양재사옥(왼쪽)과 동국제강 사옥인 을지로 페럼타워(오른쪽)   ©중기이코노미

“계속해서 폐업하는 회사가 나옵니다. 수년 전에 비해 인건비는 올랐는데 단가는 오히려 내려갔기 때문이죠” 

윤항재 한국철근가공업협동조합 전무는 철근가공업의 열악한 현실에 대해 이렇게 토로했다. 최근 제강3사를 공정위에 제소하기로 결정한 조합의 의결은 산업 전체가 고사하고 있다는 위기감이 반영됐다는 의미다.

철근가공은 제강사가 만든 철근을 가공하는 공정이다. 제강사가 철근가공업체에 하청을 맡기고, 가공된 철근은 다시 건설사에 납품된다. 철근가공업체는 대부분이 중소 영세업체로 현재 50여개사가 남아있다. 지난해만 10여개사가 폐업하는 등 업계 전반에 어려움을 겪어 업체 수가 계속해서 줄어드는 추세라고 한다.

업계 관계자는 수년전만 해도 철근가공 단가가 톤당 5만원 선이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지난해에는 3만원까지 떨어졌다. 윤 전무는 공장 임대료, 임금, 세금 등을 감안할 때 “6만원 수준은 돼야 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조합은 지난해 톤당 단가를 4만5000원으로 올려달라고 제강사에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제강사와의 단가협상은 여의치 않았다. 결국 조합은 현대제철, 동국제강, 대한제강을 공정위에 제소하기로 지난 21일 이사회에서 의결했다. 하청업체인 철근가공업체에게 단가 후려치기로 갑의 횡포를 부렸다는 이유에서다. 윤 전무는 “현재 서류를 준비중”이라며 “완료되는대로 제소절차를 진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제강사들은 조합의 공정위 제소 결정 소식에 당황하는 분위기다. 대한제강의 한 관계자는 “공정위에 제소한다고 결정했다는 사실은 신문을 보고 알았다”며 “상황을 지켜보는 중”이라고 답했다.

철근가공업계는 제강사에게 지속적으로 단가인상을 요구해왔으나 요구가 이행되지 않자, 지난해 들어 공장가동 중단을 의결하기도 했다. 지난해 11월18일 조합 총회에서 생산 중단이 결정됐으나 이날 제강3사가 협상을 받아들이겠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생산중단을 연기한 바 있다.

이후 양측은 세 차례에 걸쳐 협상을 진행했지만 결론을 내지 못했다. 윤 전무는 “제강사 측에서 단가인상에 대해 공감을 표했지만, 분위기를 성숙시켜서 하자는 식으로 나왔다”고 말했다. “인상의 필요성에 대해 인정하면서도 언제 인상할 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합은 제강사들의 협상의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의사결정권자가 아니라 실무진 급이 나와 협상에서 결론을 낼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한제강 관계자는 “단가는 우리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건설사가 결정한다. 제강사와 건설사 간의 계약으로 공급가가 결정되면 제강사가 가공업체에 철근가공을 맡기는 것”이라며 책임을 건설사에 돌렸다.  

 

현대제철 관계자는 “우리회사는 전자입찰을 통해 경쟁입찰로 낙찰가를 결정한다. 일부 수의계약이 있긴 하지만, 단가를 마음대로 조절하지는 않고 있다”고 말했다. 동국제강 관계자는 “공정위 제소건에 대해 개별 기업이 의견을 낼 수 없는 상황”이라며 답변을 피했다.

조합, 철근가공업 중기 적합업종 신청하기로 

 

조합은 단가와 관련해 공정위에 제강3사를 제소하면서 동시에 철근가공업을 중소기업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줄 것을 동반성장위원회에 신청하기로 결정했다. 대형제강사들이 직접 철근가공에 나서면서 철근가공업계가 더욱 힘들어졌다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제강사들의 입장이 미묘하게 갈렸다.

단가인상 사안에 대해 “우리도 철근가공 공장이 있어서 단가를 올리면 좋다”고 답한 대한제강 관계자는 “적합업종이냐 아니냐는 우리가 답변드릴 사항이 아니다”며 확답을 피했다. 하지만 철근가공업에서 철수할 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의견을 피력했다.

철근가공 공장을 보유한 동국제강 관계자는 적합업종 지정에 대한 회사 입장 역시 “답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현재 철근가공업을 직접 하고 있는지를 확인해 달라는 질문에 대해서도 “전문적인 사안이어서 여러 기준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다. 우리가 직접 하고 있는지도 쉽게 답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반면 현대제철 관계자는 “우리는 철근가공을 직접 하고 있지 않다”며 적합업종 지정과 관련해서는 선을 그었다.

한 업계관계자는 직접 가공업을 하는 회사와 하청을 주는 회사들 사이에 입장도 통일되지 않은 것 아니냐고 지적하기도 했다. 또 최근 제강사와 건설사가 철근가격을 두고 협상에 나섰으나 이 또한 원만하게 진행되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철근가공업계와 제강사, 건설사의 대화를 조율할 주체나 방안도 전무한 상황이다. 이 가운데 영세한 철근가공업체가 받는 피해는 늘어만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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