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인구가 13억명이니 1%만 제품을 사도 대박이라며 섣불리 진출하는 기업들이 있습니다. 그 13억명과 자신의 제품은 아무 관련이 없는데도 시장을 연결시키는 거죠. 이렇게 접근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영국 디자인회사 ‘탠저린’의 이돈태 공동대표는 지난 26일 ‘서울디자인페스티벌’ 세미나에 참석해 이같이 말했다. 탠저린은 애플의 디자인총괄 수석부사장인 조너선 아이브가 설립한 디자인회사로 영국항공, 도요타, 삼성물산, LG전자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이날 이돈태 대표는 중소기업들을 위한 성공적인 디자인 전략을 소개하면서 시장 세분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커다란 시장에서 불특정 다수의 소비자들을 잡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했다간 실패의 쓴맛을 볼 수 있다는 경고다.

실제로 이 대표도 이 같은 경험을 했다고 한다. 이 대표는 “주방기구업체 ‘해피콜’의 냄비 디자인을 맡은 적이 있다. 냄비는 이미 시장에 많이 나와 있으므로 눈에 띄게 예쁘게 만들면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결과적으론 생각보다 잘 안팔렸다”고 말했다.

냄비가 예쁘면 많이 살 것이라는 기대는 안일한 생각이었다. 다음 제품을 디자인할 때는 소비자들의 패턴을 보다 면밀히 살폈다. 이 대표는 “한국과 유럽의 냉장고 속을 비교해 봤더니 유독 한국에서만 냉장고 안에 냄비를 넣어 놓는 문화가 있었다. 음식을 많이 만든 한국 주부들이 냉장고 안에 냄비 채로 음식을 보관하는 것이었다”고 했다.

다음 제품의 타깃은 보다 구체적이었다. 자녀가 있는 등의 이유로 음식을 많이 만드는 주부들을 대상으로, 냉장고 안에서 보관이 가능한 냄비를 디자인했다. 기존 냄비처럼 불 위에서 조리도 할 수 있고, 조리를 마친 뒤에는 완전한 밀봉 상태로 냉장고에서 보관까지 할 수 있는 제품이었다. 구체적으로 접근하니 결과도 달라졌다. 이 대표에 따르면 해피콜의 냄비는 1000억원치가 팔렸다.

“처음에는 시장이 엄청 커 보입니다. 중소기업들이 찾아야 할 것은 아주 작은 점입니다. 소수의 소비자들로부터 충성심을 끌어낼 수 있는 ‘점’을 찾고, 그 점을 이어서 선을 만드는 겁니다. 그 선들을 연결하면 면이 만들어집니다. 비로소 탄탄한 시장이 형성되는 거죠”

세분화된 시장 전략으로 성공한 사례가 중국 샤오미다. 2010년 4월 뒤늦게 스마트폰에 진출한 샤오미는 2014년 3분기 삼성전자를 제치고 중국 내 스마트폰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샤오미의 타깃은 일명 ‘주링허우(九零後)’ 세대였다. 시장개방으로 중국이 경제적 부를 이룬 1990년 이후에 태어난 이 세대는 소비성향이 강하고 새로운 제품에 대한 수용도가 높은 것이 특징이다.

LG경제연구원은 지난 8월 3일 발간한 보고서 ‘중국의 신생 스마트폰 기업들이 위협적인 이유’에서 “샤오미를 비롯한 중국 스마트폰 기업들은 소비자를 세분화했다. 카메라 선호형, 오디오 선호형, 여성, 온라인 청년 등으로 나눠 각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제품을 제공해 빠르게 성장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시장 세분화 다음으로 고려해야 할 것은 ‘사고 절약’이다. 중소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폐기된 안은 확실하게 제거하고 한 가지에 집중해야 한다는 얘기다. ‘오컴의 면도날 이론(Occam’s razor)’으로, 탈락한 아이디어까지 끌고 가다 초기 전략까지 흐트러져 두 마리 토끼 모두 놓칠 수 있다고 이 대표는 말했다.

그래서 만든 것이 앞으로도 기대고 뒤로도 기댈 수 있는 의자다. 수험생에게만 팔 것이 아니라 전 국민이 쓸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에서 출시했으나 결과는 혹독했다. 이 대표는 “오컴의 면도날 이론을 망각한 결과다. 앞으로 기대는 의자를 계속 출시해 그 시장을 키웠어야 하는데 더 넓은 시장으로 범위를 넓히니 처음 출시했던 제품까지 어려워졌다”면서 “이런 아픔은 대부분의 기업이 겪고 있다. 모두 욕심을 부리면 모두 망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이기도 한 이돈태 대표는 중소기업일수록 제품의 완성도에 심혈을 기울여야 한다고도 조언했다. 1%의 디테일이 제품의 성패를 결정짓는 상황에서 함부로 움직여서 좋을 것 없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이라고 성급하게 시장에 제품을 내놔선 안됩니다. 아직 선을 보일 때가 아니다 싶으면 더 고쳐야 합니다. 완성되지 않은 제품을 내놓는 순간 지금까지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될 수 있습니다. 출시 시기가 늦어지더라도 꿋꿋히 최고의 제품으로 개선해내려는 인내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