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해 있는 노벨상 수상자의 메달이 역사상 최초로 경매에 나온다. 사망한 수상자의 메달이 경매를 통해 고가로 팔린 일은 여러 차례 있었지만 생존자가 자신의 메달을 판매하는 일은 처음이다. 이 사건의 주인공인 제임스 왓슨이 자신의 메달을 팔겠다고 나선 이유가 인상적이다. 사회적인 재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저명한 노벨상 수상자였던 왓슨이 사회적으로 매장된 이유는 인종주의 발언 때문이었다. 글로벌 비즈니스에 나서는 한국의 중소기업들이 반드시 염두에 둬야 할 사안이다.
왓슨의 발언을 상세히 보도한 2007년 10월17일자 국민일보 기사를 살펴보자. 영국 일간지 인디펜던트를 인용해, 왓슨 박사가 영국의 선데이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서구 국가들은 흑인이 백인만큼 영리하다는 전제 아래 각종 아프리카 정책들을 펴고 있지만 이는 출발부터 잘못된 것”이라며 “이 때문에 아프리카의 미래는 암울하다”고 발언했다고 이 기사는 소개했다. 또 “인종간 지적 수준차를 양산해내는 유전자가 10년 내 발견될 것”이며 “흑인을 고용해본다면 그들이 우리와 지적 수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고 보도했다.
이 발언 이후 왓슨은 기업의 이사직에서 물러나야 했고, 쏟아지던 대중강연 역시 끊기면서 어려움을 겪게 됐다고 한다.
생물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을 왓슨은 바로 DNA의 이중나선구조를 밝혀내 분자생물학이라는 새로운 학문의 시발점을 만들어낸 업적으로 1962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수상했다. 생명의 비밀을 밝혀낸 최대의 업적이었지만, 편견이 담긴 인터뷰로 인해 그간의 업적으로 쌓은 명성이 모두 물거품이 되고 만 것이다.
여기서 잠깐 왓슨의 발언을 한번 돌아볼 필요가 있다. “흑인을 고용해본다면 그들이 우리와 지적 수준 차이가 있음을 알게 될 것”이라는 말,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다. 해외에 진출한 한국기업 종사자들 다수가 이같은 말을 공공연히 해왔다는 기억이 난다.
이같은 발언이나 기업문화로 인해 실제로 미국에서는 한국 기업을 대상으로 한 인종차별 소송이 벌어졌다는 소식이 종종 전해져오기도 한다. 많은 경우 한국 기업들은 억울함을 호소한다. 한국인의 시각에서 보면 경미한 사안이거나, 회사의 문화이거나, 인종주의가 아니라 개개인에 대한 개별적인 판단이라는 취지다. 그러나 인종을 기준으로 사람을 구분짓는 사고방식 자체가 ‘racism’ 즉 인종주의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한국 기업들의 항변은 대부분 스스로가 인종주의에 빠져있음을 증명하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동남아시아인이나 중국인, 이슬람교인 등에 대한 ‘평범한 한국인의 인식’ 수준의 발언이 외국에서는 치명적인 인종주의 발언인 경우도 많다.
미국에서는 백인 경관의 총에 맞아 어린 흑인이 사망한 사건을 계기로 대대적인 시위가 벌어졌다. 이른바 퍼거슨 시(市) 사태의 사실관계를 따지기 이전에, 미국 또는 외국에서 인종주의가 얼마나 민감한 사안일 수 있는지를 깨달아야 한다. “그들은 인종문제에 예민하니 조심해”라는 식의 생각을 넘어서서, 스스로 인종주의적 사고나 행동을 행하지도 당하지도 않는 것이 글로벌 비즈니스에 나선 한국 중소기업들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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