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모방이다’는 ‘예술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가장 빈번한 대답으로 사용되어온 정의이다. 여기서 모방은 대상을 단순 모방하는 것을 넘어 누군가의 작품에 영향이나 감흥을 받아 스스로 창작활동에 도입하는 것을 포함한다. 일찍이 동양에서는 그림을 배우거나 그릴 때 먼저 규범이 되는 작품을 모방하여 표현 법식(法式)을 익히는 과정을 거쳤다.

규범이 되는 작품을 선정한 후 모(摹)·임(臨)·방(倣)이라는 3단계를 정신과 형식을 깊이 이해하고 깨닫기 위한 필수과정으로 삼았다.

모(摹)·임(臨)이 그림의 법식을 습득하기 위한 기본적 방법이라면, 방(倣)은 ‘작품의 뜻(의미)을 찾아내고, 이를 새롭게 해석하는 것’을 말한다. 궁극적으로 모·임·방은 원본을 똑같이 베끼는 것이 아니라 작품의 내재적 정신과 의미를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스스로 창작활동을 펼치기 위한 제작태도이다. 동양과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도 명작에 영향을 받아 자신만의 조형세계로 재구성하는 경우가 많다.

명작은 시공간을 넘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

피카소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이란 작품에 매료되어 연작을 58점이나 그렸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피카소 뿐만 아니라 고야, 달리, 클림트, 마네는 물론 헤밀턴, 보테로 등 현대 화가들도 <시녀들>의 작품을 새롭게 재해석하였을 만큼 밸라스케스의 그림 한 점은 미술사의 숱한 화가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미켈란젤로는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를 그릴 때 마사초의 프레스코 벽화를 통해 표현방법의 해법을 찾았다.

반면, 마사초는 초기 르네상스 시대에 활동했던 도나텔로의 조각품을 보고 영향을 받았다. 알베르토 자코메티는1958년 로마의 카피톨리니 미술관에서 콘스탄틴 황제의 대리석 두상을 보고 <거대한 두상>을 만들었다. 미니멀리즘 조각가 칼 안드레는 사실주의 화가 오노레 도미에의 유화 <밧줄타는 남자>에 강하게 이끌렸고, 미술의 사진작가이자 행위예술가인 엘리너 앤틴은 막스 에른스트의 <나이팅게일에게 위협받는 두 아이>를 좋아하는 그림 중 최고의 작품으로 꼽았다. 주지하다시피 명작은 동시대에 작가에만 영향을 주는 것은 아니다. 명작의 힘은 시공간을 넘어 누군가의 창작활동에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한다는 것에 있다.

미국의 극사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척 클로스는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의 작품에 영향을 받았다. 그는 학창시절부터 페르메이르가 그림을 그린 제작방식에 호기심을 느꼈다. 렌즈나 카메라옵스큐라와 같은 기계장치를 활용했다는 것 말고 어떤 기법을 사용했는지 명확한 근거가 없는만큼 페르메이르의 사실적 표현에 대한 궁금증이 컸다.

척 클로스는 대형캔버스에 사진과 프로젝터(캔버스에 빔프로젝터를 이용해서 사진을 투사하여 그림을 그리는 방식)라는 기계장치를 최대한 이용하는 것과 비교가 된다. 척 클로스는 페르메이르가 택한 표현방식을 추적하면서 작품에 담긴 형식을 해독해서 창작활동의 필요한 영감을 받았다. <우유 따르는 하녀>라는 작품을 보고 쓴 찬사와 감동을 보면 척 클로스가 요하네스 페르메이르에 매료된 이유를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이 그림을 감상한다는 것은 캔버스에 칠해진 물감의 물리적인 현실을 넘어, 신이 창조했다고 해도 좋을 만큼 숭고한 이미지와 소통하는 것이다.”¹

빌 비올라와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천사들>

미국의 미디어 예술가로 비디오 아트와 음향 기술을 선구적으로 활용하여 세계적 명성을 얻은 비디오 아트의 거장 빌 비올라도 예외는 아니다. 빌 비올라는 르네상스의 많은 작품 중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로 불리는 조반니 벨리니의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천사들>이란 작품에서 영감을 얻었다. 빌 비올라가 영국 국립미술관 세인스버리 전시실에서 이 작품을 감상할 때 아버지가 대장암 진단을 받은 상태라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심했다. 이 같은 심리적 불안감에서 작품을 마주한 빌 비올라는 그림 속 죽음에 이른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순간 아버지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감정이 복받쳐 평정심을 잃고 울고 말았다. 다행히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천사를 보면서 천국으로 향하는 아버지(그리스도)를 떠올리며 해방된 기분을 느꼈다.

빌 비올라는 이 경험을 바탕으로 몇 년 후 같은 미술관에서 ‘열정(The Passions)’이라는 주제로 개인전을 개최할 때 힐링의 감흥을 주었던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천사들>과 연관한 <출현>이라는 작품을 출품했다. <출현>은 마솔리노의 <피에타>작품의 구성방식을 차용했지만, 실질적인 영감은 조반니 벨리니의 그림에서 겪은 특별한 감동이 출발점이었다. 빌 비올라가 <죽은 그리스도를 부축하는 천사들>을 영감의 원천으로 꼽은 이유는 ‘도움-위안-보살핌-믿음, 정신력-지속되는 삶-생명의 숨, 행복-순순한 복종-해방’ 등 정신과 마음을 힐링해 줄 삶의 긍정적 메시지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조반지 벨리니를 향한 빌 비올라의 존경은 2008년 11월3일 이탈리아 신문 <라 레푸블리카>에 조반니 벨리니 앞으로 보낸 그의 편지에서 엿볼 수 있다.

“오늘 저는 당신의 그림을 보고 큰 감동과 영감을 받았습니다. 섬세하고도 감각적인 색채로 그림 속 인물에 생기를 불어넣으셨더군요. 그 오묘한 색감에 정말이지 감탄했습니다. 500년 전에 만드신 작품 앞에서 저는 경의를 느끼며 한없이 작아집니다.”²

김정희의 <세한도> 그리고 서도호

화가들이 명작에서 받은 영감이나 감동은 동서양의 구분이 없다. 한국 작가로 세계적 명성을 얻고 있는 서도호는 김정희의 <세한도>에서 깊은 영감을 얻었다. 국보 180호인 <세한도>는 김정희가 제주도 유배시절에 제자 이상적의 변함없는 의리를 소나무와 잣나무의 지조(歲寒然後 知松柏之後彫也)에 비유해 그려 선물한 정표이다. 인위적인 기술이나 기교가 아닌 농축된 정신세계를 문인화의 이념에 담아 표현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한다. 특히 단색조의 수묵과 초묵(焦墨)의 필획만으로 표현한 필묵의 운용, 소재와 구도에서 보여준 단순미와 절제미를 최고 정수로 꼽는다.

서도호에게 <세한도>는 ‘김정희-이상적-후지즈카-손재형’으로 연결된 역사와 ‘손재형-서세옥-서도호’로 이어진 개인적 인연과 더불어 그의 작품세계, 즉 한국적 정서가 깊이 배어있는 집을 세우고픈 욕망과 잘 맞아떨어진다. 이는 “김정희는 몇 가닥 선으로 집을 그려 고독과 적막을 표현했다. 그런 점이 내 가슴을 언제나 울린다. 집은 복잡한 공간이 아니다. 지극히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공간인 것이다.”³ 라고 밝힌 글에서 읽혀진다.

척 클로스, 빌 비올라, 서도호 등과 같이 미술가들은 미술관이나 화랑에서 작품을 직접 보고 창작의 영감을 받은 경우가 많다. 그러나 여건상 작품을 보지 않고 도록이나 복제본만으로도 깊은 영향을 받기도 한다. 한국 근현대미술을 대표하는 박수근은 일찍이 밀레의 복제본을 보고 ‘밀레와 같은 화가가 되겠다’는 인생좌표를 정했다는 이야기는 널리 알려진 일화다. 결론적으로 명작은 화가가 직접 감상을 하든 인쇄물로 감상하든 중요한 것은 동시대를 넘어 영감의 원천으로 작용해왔다는 점이다. 명작은 또 다른 명작의 원천이다.[참고문헌=¹,²,³ 화가가 사랑한 그림/글=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jpda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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