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일 ‘CSV 2014’ 국제컨퍼런스 현장에서는 대기업 사회공헌팀 실무담당자들의 한숨이 이어졌다. 윗선에서는 요즘 ‘트렌드’라는 CSV 전략을 수립하라고 닦달하고 있는데, 실무진 입장에서는 CSR과 CSV의 차이가 모호하다는 것이다.

CSV의 정체부터 알고 가자. CSV는 ‘Creating Shared Value’의 약자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기업도 이득을 보는 공유가치를 창출한다는 개념이다. ‘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의 약자인 CSR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만을 강조한다면 CSV는 기업도 돈을 벌고, 사회에도 기여하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전략이다.

듣기에는 좋으나 막상 전략을 짜려면 애매하다는 게 실무담당자들의 말이다. CSV라는 개념 자체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극단적인 예를 들자면 음료회사가 “맛있는 음료로 국민들을 행복하게 했으니 사회에도 기여를 했고, 기업도 돈을 벌었다”는 주장도 CSV가 될 수 있다. 최근 팀명을 ‘CSV팀’으로 바꿨다는 한 대기업의 실무담당자는 “새로운 CSV 전략을 짜기보다는 기존에 해왔던 사업 중 접목시킬 수 있는 것들을 찾고 있다”고 말했다.

사회공헌분야에도 나름의 유행이라는 게 있다. CSV도 그 중 하나다. 하버드대 마이클 포터 교수가 이 개념을 주창하면서 한국에도 밀물처럼 밀려왔다. 산업정책연구원과 동아일보는 올해 처음으로 ‘CSV 포터상’이라는 수상제도를 만들었고, CSV서울이니셔티브는 국제컨퍼런스인 ‘CSV 2014’를 시작했다. 이런 시류를 마뜩잖게 여기는 기업의 목소리도 있다. “교수들이 새 이론을 내놓을 때마다 기업이 끌려 다녀야 하나”라는 푸념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사업이 CSR이니, CSV니 하는 단어에 갇힐 필요는 없을 것 같다. 정부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정책을 짜고, 기업은 자신만이 가진 인적·물적 자원을 활용해 사회문제를 해결한다는 본분을 잊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하다. 시류에 이끌려 단타성 사회공헌사업을 하는 것은 사회공헌은 물론 기업 이미지제고에도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전국경제인연합회도 최근 발행한 사회공헌백서에서 “작은 규모의 사업을 추진하기 보다는 기업이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집중적으로 투자할 필요가 있다”며 모범 사례를 소개했다. 독일의 화학기업인 바스프는 사회공헌사업의 절반 이상을 화학교육에 투자하며, IT기업 ‘구글’은 업(業)의 특성을 살려 인터넷 통신장비를 열기구로 하늘에 띄워 인터넷 접근권 문제를 제기하는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우리 기업들도 전문성 있는 사회공헌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교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