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일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벌어지는 21세기 우리의 상황이 놀랍다. 오늘자 언론기사로 보도된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과 그녀에 의해 미국 뉴욕 땅에 덩그러니 내쳐진 이 회사 승무원 이야기다.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현지 시각 5일 새벽 0시 50분, JFK 공항에서 이륙을 앞두고 활주로로 이동중이던 대한항공편이 갑자기 후진해 게이트로 돌아왔고, 승무원 한 사람을 내려놓은 후 다시 이륙해 인천공항으로 향했다. 비행기에서 내쳐진 사람은 일반 승무원도 아닌 승무원 사무장이었단다. 당시 이 비행기 일등석에 탑승 중이던 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 조양호 회장의 딸인 그녀가 내린 ‘하선 명령’ 때문이었단다.

발단은 한 승무원의 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조 부사장이 해당 승무원에게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고함을 친 것이었다. 이어 달려온 사무장마저 태블릿컴퓨터에서 서비스매뉴얼을 제대로 찾아 보여주지 못하자, 조 부사장이 이번에는 사무장 보고 비행기에서 내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그녀의 고함 소리가 얼마나 컸던지 일등석은 물론 이코노미석까지 이 소리가 들릴 정도였단다. 대한항공 측은 해당 승무원이 주문하지도 않은 견과류를 봉지째 들고 와 서빙한 것이 일단 규정 위반이라고 해명하는 모양이다. 여기에 사무장마저 서비스 매뉴얼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자 객실을 책임질 준비되지 않았다고 조현아 부사장은 본 것이고, 이에 따라 비행기에서 내리도록 지시했다는 것이다.

해당 승무원이 매뉴얼을 제대로 이행했는데 조 부사장이 개인적으로 만족하지 못한 것인지, 악천후보다 더 한 위기상황에서도 침착해야 할 사무장이 긴장으로 태블릿컴퓨터를 제대로 다루지 못한 것이 사실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 부사장이 미스테리 쇼퍼였다는 정황도 없고, 그저 우연히 항공기에 탑승 중이었던 듯 싶다.

결국 회사 임원이 객실을 ‘책임’지는 사무장을 쩌렁저렁 호통과 함께 비행기에서 강제로 내리게 한 것인데, 이는 두고두고 항공사(史)에 남을 일이다. 그렇게 뚝딱 부사무장에게 대리를 맡길 정도로- 음주나 건강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사무장 자리가 가벼운 것이었다는 점도 놀랍고, 사무장 없이 운항 중이던 비행기에 비상사태라도 발생하면 어쩔 요량이었는지도 궁금하다. 운항 중인 비행기의 기장은 망망대해 위의 선장과 같다. 모든 문제는 기장이 결정을 내리고 책임을 져야 한다. 항공사 임원이 아니라 임원의 할아버지, 작고한 조중훈 회장이라도 그 안에서는 감놔라 배놔라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었을 것이다.

월권의 문제와 더불어, 이는 인간의 존엄에 대한 심각한 침해로 보여진다. 그 추운 십이월의 새벽, 머나먼 이국 공항에, 승무원 한 사람을, 그것도 활주로로 향하다가 후진까지 해가며, 내동댕이치듯 부리고 가는 것은, 사무장씩이나 되는 선임급 승무원에게는 평생 씻지 못할 수치로 남을 수도 있다. 물론 목구멍이 포도청, 눈물을 삼키며 아무 것 아닌 척 할 수는 있을 것이다. 다만, 사람이 죽고 사는 거대한 문제가 아닌 다음에야 그자리에서 베테랑 급의 직원에게 그렇게까지 매섭게 ‘본’을 보여야 했는지 씁쓸하고 처연할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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