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부사장의 ‘땅콩 리턴’ 사건은 여러 모로 곱씹을 구석이 많은 사건이다. 재벌3세의 안하무인격 행태와 해당 기업의 미숙한(혹은 안일한) 사후대처가 얼마만큼의 후폭풍을 불러올 수 있는지 여실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조현아 부사장 측에 불리하지 않게 정리하자면, 사건 전말은 이렇다. 지난 5일 뉴욕 JFK공항을 이륙하려던 대한항공 항공편에서, 조현아 부사장이 승무원의 땅콩 서비스 방법이 틀렸다며 사무장에게 매뉴얼 확인을 지시했다. 당황한 사무장이 이를 제대로 하지 못하자 조 부사장은 비행기를 돌려 사무장을 공항에 내려놓고 다시 출발하게 했다. 오늘자 한겨레 보도에는 조 부사장이 승무원과 사무장의 무릎을 꿇게 하고 물건을 집어던졌다는 진술도 나왔다. 

이 사건의 여파는 쓰나미처럼 이곳저곳을 범람하고 있다. 조 부사장은 찔끔찔끔 보폭을 넓혔다. 지난 9일 보직 사퇴를 발표했으나 비난여론이 거세지자 10일 대한항공 부사장직 사표를 냈고, 12일에는 다른 계열사 대표직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조 부사장에 출국금지 명령을 내리고 비행기록 확보를 위해 대한항공을 압수수색했다. 그녀는 항공법 위반 여부를 조사하기 위한 국토교통부의 출두 요청도 받아놓은 상태다. 급기야 아버지인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의 대국민 사과 기자회견까지 이어졌지만, 아직 미봉은커녕이다. 본인의 행동이 ‘참사’ 수준의 부메랑이 돼 돌아왔고, 그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엄청난 돈을 써가며 힘들게 쌓아올린 기업 이미지는 단 번에 와르르 무너졌다.

조 부사장은 그날 일이 이렇게까지 커질 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대한항공 임원은 기내서비스와 안전에 대한 점검 의무가 있어 문제제기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대한항공의 해명처럼 부사장(혹은 조양호 회장의 딸)으로서 마땅한 일을 했다고 여겼을지도 모른다. 책임을 승무원에게 전가한 대한항공의 ‘호위무사’식 대처도 화를 키웠다. 미숙하기보다는 안일했다. 국민감정보다는 로열 패밀리의 심기가 더 두려웠을 것이다.

이 지점이다. 대한민국이 이렇게까지 들끓는 것은 이 사건을 조현아 씨 개인의 문제로 읽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정상적인 절차나 ‘매뉴얼’보다는 로열 패밀리의 불호령 한 마디가 우선권을 갖는 재벌 치하 대한민국 대기업의 민낯에 분노하고 절망하기 때문이다. 이런 ‘비정상’의 매커니즘은 언제쯤 정상화될 수 있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