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다. 가족이, 사랑이, 따듯함이 간절한 계절이다. 이걸 놓칠 TV가 아니다. 채널 돌릴 때마다 감동적 장면 혹은 아름다운 언어의 향연을 본다. 지난 가을 나왔던 용인 한 초등학교 어린이들도 다시 보니 반갑다. 질환으로 운동회마다 꼴찌를 도맡던 친구를 위해 손잡고 달리기한 아이들이다. 어려운 때일수록 어려운 사람들끼리 손잡고 오순도순 잘 지내봐라, 결론은 늘 이렇다. 조금 비뚤어진 표현이 허락된다면 ‘너희들끼리의 연대’로 사회적 갈등을 좀 줄여봐라, 정도의 의미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곳간에서 인심 난다느니 입바른 소리를 해대도 기층민의 연대, 혹은 각성은 변변한 사회안전망 하나 없었던 우리 사회를 떠받치는 유일무이한 버팀목이었다. 지난해 불우이웃돕기 모금액만 봐도 강남, 서초, 송파 등 소위 ‘부자 동네’가 성북, 도봉, 중랑 등 ‘반대편 동네’보다 훨씬 인색했던 것이 사실이고, 과장하자면 IMF 경제위기를 넘긴 것도 집집마다 금붙이 들고 나와 허술한 나라 곳간을 채워준 서민들에 기댄 바 크다. 그렇게 낮은 곳에서의 연대는 붕괴와 범람의 위협으로부터 사회를 지켜주는 거멀못 역할을 해 왔다. 연대가 만들어 준 완충지대 안에서 기층 구성원들이 그나마 ‘사람다움’을 유지하려 애쓰면서, 덩달아 상위계층을 포함한 사회 전체도 안전함을 만끽할 수 있었다.
2014년 연말, 이러한 역할이 여전히 유효할지는 미지수다. 그나마 숨 좀 쉬던 정규직조차 안정성을 위협받고 있고, 대법원에서 뒤통수를 맞은 쌍용차 노동자들은 70미터 상공에서 엄동설한을 보내고 있다. 자신이 속한 ‘동그라미’ 밖의 사람들은 모두 ‘미개인’이어야 직성이 풀리는 소위 ‘상류층’ 젊은 자제들(여권에 찍힌 생년보다, 정신·육체적 연령이나 아빠 바짓가랑이 뒤로 숨는 습관이 더 정확하게 나이를 규정할 것이다)은 하루가 멀다고 사람들의 비윗장을 뒤집어놓는다. 이래서 어디 ‘뭉칠’ 맛이 나겠는가?
기독교식 소명의식과 자본주의를 만들고 우리에게 전파해 준 선진국 사람들 모두가 속없는 이상주의자는 아닐 것이다. 그들이 사회안전망이나 더불어 살기에 공을 들이는 데는 그들만의 치밀하고 정교한 셈법이 자리하고 있다. 저 맨 아래 지하층 기저가 흔들리면 최상단 펜트하우스는 속절없이 곤두박질할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나중에 가래로 막느니 지금 호미를 들이대는 게 훨씬 안전하고 ‘저렴한’ 방법이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 배워왔기 때문이다.
안전하고 안정적인 사회의 토대를 즐기고 싶다면 그에 걸맞은 지불을 하거나 최소한 ‘성의’는 보여야 한다. 그저 싸우지 말고 잘 지내보라는 말로 편승하기에는 시절이 너무 수상하다. 익숙한 표현으로 하자면 이렇다. 공짜 점심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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