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 조례가 위법이라는 고등법원 판결이 나왔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 대형마트들이 회심의 미소를 짓고있는 사이 소상공인들은 투쟁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는 영업시간 제한과 의무휴업의 두 축으로 나뉜다. 소상공인 보호를 위해 대형마트의 영업을 규제하는 내용을 담은 유통산업발전법(이하 유통법)은 지난 2011년 일부 개정됐다. 영업시간과 의무휴업 날짜는 대형마트가 소속된 지자체의 시장·군수·구청장이 조례가 정하는 바에 따라 지정할 수 있도록 했다.

개정된 유통법이 처음 시행된 것은 2012년 3월이다. 개정안에서는 대형마트들이 자정부터 오전 8시까지 영업을 할 수 없도록 했고, 의무휴업은 월 1~2회로 정했다. 그러나 대형유통기업이 기업형슈퍼마켓(SSM)으로 끊임없이 골목상권에 진입하는데다 코스트코 등의 대형마트는 영업제한 명령을 어기고 의무휴업일에 영업을 강행하면서 재개정안이 만들어졌다.

지난 2013년 4월부터 시행된 재개정안은 대형마트에 대한 영업규제를 강화한 것이 골자다. 영업시간 규제는 자정부터 오전 10시로 기존보다 두시간 늘어났고, 의무휴업은 월 2회로 고정됐다. 

의무휴업 명령을 어긴 대형마트에 대한 처벌도 강화됐다. 3000만원이었던 최고 과태료는 1억원으로 상향됐고, 1년에 3회 이상 위반한 사업자에는 1개월 이내의 영업정지를 내릴 수 있게 됐다.

이번에 위법 판결을 받은 것은 대형마트에 대한 규제가 지금 보다 낮은 수준이었던 2012년 유통법 개정안이다. 지난 12일 서울고등법원은 “유통법에서는 대형마트를 영업규제 대상으로 삼고 있으나 (원고 측인)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은 이 법상 대형마트로 볼 수 없다”며 이들에 대한 영업규제 처분이 위법이라고 판시했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중소유통업자와 소상공인 매출 증대에 영향을 미쳐 공익 달성에 효과적”이라는 원심을 뒤집은 판결이었다. 

영업규제 위법 판결이 논란이 되는 이유는 대형마트에 대한 서울고법의 정의 때문이다. 

현행 유통법에 따르면 대형마트의 정의는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용역의 제공장소를 제외한 매장면적의 합계가 3000제곱미터 이상인 점포의 집단으로 식품·가전 및 생활용품을 중심으로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다. 여기서 눈여겨 볼 부분은 ‘점원의 도움 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의 집단’이라는 부분이다. 서울고법이 롯데마트 등을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은 이 대목 때문이다.

판결문에서 법원은 롯데마트 등이 “채소·과일 코너에서 소비자 주문에 따라 점원이 포장을 해주고 있고, 스포츠용품 등에서 점원이 제품의 적합성에 관한 구체적인 의견을 제공하고 있으며 점원이 카운터에서 물건을 계산하고 소비자 요구에 따라 물건을 찾아주는 등의 형태로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면서 대형마트가 아니라고 판시했다. 롯데마트, 이마트, 홈플러스 등이 법령상 대형마트의 요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에 영업제한을 할 수 없다는 의미다.

이와 관련해 참여연대·민변민생경제위원회·전국유통상인연합회 등은 지난 15일 기자회견을 열고 “대형마트가 점원의 도움없이 소비자에게 소매하는 점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은 대형마트의 영업형태를 무시한 현실성 없는 판결”이라며 이 말대로라면 한국에 대형마트는 없다고 비판했다.

같은날 소상공인연합회·전국상인연합회·수퍼마켓연합회는 법원이 “법률의 정신 보다는 법문의 형식을 존중했다는 점에 안타까움을 금할 수 없다”며 성명을 냈다. 전통시장과 소상공인을 보호를 위해 만들어진 유통법 정신을 고려하지 않고 법원이 ‘대형마트’라는 법문 해석에만 몰두했다는 지적이다. 또 소상공인연합회 등은 이번 판결을 계기로 지자체가 대형마트 영업제한을 완화할 경우 전면적인 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덧붙였다.

대형마트 영업규제가 골목상권 보호라는 당초의 목적을 달성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논란이 뜨겁다. 소상공인들은 매출이 늘어 실효성이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에서는 소비자들이 영업규제 폐지를 원하고 있다는 주장을 고수하고 있다.

지난 10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이 발표한 대형마트 의무휴업일 전후 소상공인 매출액 및 고객 수 변화 조사에 따르면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소상공인 매출액은 평균 10.4% 증가했다. 소상공인 점포 중 61%는 의무휴업일 제도가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된다고 답했으며, 소비자의 45.5%는 의무휴업일에 대형마트 대신 전통시장과 골목상권을 이용한다고 응답했다.

전경련의 조사 결과는 정반대다. 지난 11월 전경련이 발표한 대형마트 의무휴업 효과 소비자 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비자의 64.3%는 대형마트 의무휴업일에 전통시장을 방문하지 않았다고 답했다. 의무휴업일에는 동네 중대형슈퍼(38%)를 이용거나 다른 날 대형마트를 이용(24%)한다는 답변이 과반을 넘었다. 대형마트 의무휴업 제도를 폐지 또는 완화해야 한다는 소비자가 61.5%에 달했다는 것이 전경련의 설명이다.

이번 판결에서 재판부는 후자 쪽에 무게를 뒀다. “맞벌이 부부는 야간이나 주말이 아니면 장을 보기 어렵다는 점에서 (의무휴업일 지정은)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했다”며 “영업제한으로 달성되는 전통시장 보호 효과는 뚜렷하지 않고 아직도 논란 중에 있는 상황”이라며 영업규제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여당에서는 이번 판결이 당장의 영업규제 완화로 나타나지는 않을 것이라며 섣부른 판단을 경계하고 있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지난 18일 당정회의를 열고 대형마트 영업제한 위법 판결에 따른 대책을 논의했다. 이와 관련, 새누리당 정책위원회 수석부의장 나성린 의원은 “이번 판결은 규제가 약한 유통법 개정안에 대한 승소로 대법원 판결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아있다. 당장에 규제를 풀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면서 “소비자 편의도 중요하지만 재래상인 생존권도 중요한 만큼 대법원 판결 전이라도 공생 대책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유통법 자체를 다시금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은 이전부터 꾸준히 나오고 있다. 지난 10월 유통분야 추계 통합 학술대회에서 김천수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현행 유통법이 “식품·가전·생활용품을 점원의 도움 없이 소매하는 ‘대형마트’라는 판매형태에 대한 영업 규제인지, 대기업의 경쟁력이 규제대상인지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만약 대형마트라는 판매형태가 규제 대상이라면 그 기준을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있고, 대기업 경쟁력이 규제 대상이라면 대형마트뿐 아니라 백화점, 아울렛 등 모든 대형 소매점을 규제하는 것이 옳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대규모점포 매장 정의를 비롯해 소매업태의 분류 등 유통법 전반에 대한 정비 작업이 필요하다”고 제안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