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기상여금 등을 퇴직금 산정시 기준이 되는 ‘통상임금’에 포함해야 한다는 지난해 12월 대법원 판결 이후, 크게 두 가지 예상이 나왔다. 고정상여금이 대거 폐지될 것이라는 점과 노사간 소송이 대폭 늘어날 것이라는 우려였다. 예상외로 고정상여금 폐지는 적었지만, 소송은 줄을 잇고 있다.
지난 11월 고용노동부와 노사발전재단이 공동 개최한 ‘2014 일터혁신 세미나’에서 이영면 동국대 교수가 국내 기업 10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결과에 따르면 2014년에 고정상여금이 있는 기업은 612개, 없는 기업은 388개였다.
고정상여금이 없는 기업 가운데는 대법원 판결 이후 고정상여금을 폐지한 기업이 60개(15.5%)에 불과했고, 84.5%에 달하는 기업들은 과거부터 고정상여금이 없었다고 응답했다.
결과적으로, 2013년에 고정상여금이 있었던 기업은 672개였고 이들 중 대법원 판결 이후 고정상여금을 폐지한 기업은 8.9%(60개)라는 계산이 나온다. 고정상여금을 폐지한 기업 중에서도 기본급으로 전환한 업체가 대부분이었고, 변동상여금으로 전환한 업체도 있었다.
1000개사 대상 고정상여금 변동현황 조사결과
<자료=2014 일터혁신 세미나 자료집>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더라도, 인건비 상승이 크지 않을 것이라는 응답비율이 절반 이상을 차지한 점도 기존의 예상과 다른 결과다.
고정상여금을 지속 유지하고 있는 612개사에 대한 조사결과, 고정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인건비가 ‘10% 미만의 상승’을 보일 것이라는 응답이 38.6%로 가장 많았다. ‘거의 없을 것’도 23.5%에 달해 62%에 달하는 기업들이 인건비 상승을 크게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10~20% 미만의 상승’은 25.0%, ‘20%이상 상승’은 12.9%의 응답률을 보였다.
인건비 변동이 없을 것으로 답한 기업들은 고정상여금 비중이 낮고(38.2%), 연봉제 사원이 대부분(27.8%)이며, 초과근로가 거의 없음(19.4%)을 이유로 설명했다.
반면 소송이 급증할 것이라는 예상은 맞아떨어지고 있다. 어떤 임금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명확한 반면, 이른바 ‘신의칙’의 대상이 되는지 여부에 대해서는 대법원 판결만큼이나 이후 하급심 판결 역시 모호한 상황이다.
먼저 특정 수당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재직요건’이 결정적인 판단요건으로 자리잡고 있다. 정기적으로 지급되는 각종 수당을 지급일에 재직자에게만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 아니다. 반면 퇴사자에게 일할 비례해 지급하는 경우에는 통상임금이다. 대법원 판결에서 나타난 ‘재직요건’ 법리에 따른 결정이다.
반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합의가 존재하는 경우 신의성실의 원칙에 따라 사용자의 손을 들어줄 지는 법원 판결이 엇갈리고 있다. 이것은 대법원이 제시한 요건인 ‘중대한 경영상의 어려움’을 판단하는 기준이 모호하기 때문이다.
통상임금 기준
<자료=대법원, 고용노동부> ©중기이코노미
예를 들어 지난 5월 광주지법 순천지원은 철강재 포장업체인 누벨 근로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낸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측 승소판결을 내렸다.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이라고 판단했지만, 회사의 순이익에 비해 통상임금으로 인해 추가 부담하는 인건비가 과도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대전고등법원 역시 5월 경북코치서비스 직원들이 제기한 통상임금 소송에서 회사측 승소판결을 내렸다. “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2006~2009년까지 매년 약 17억원에서 23억원 정도를 추가로 부담하게 돼 회사에 큰 재정적 부담이 될 것”이라고 신의칙 항변 인용 이유를 밝혔다.
그러나 같은 달 서울중앙지법은 아시아나항공 통상임금 소송에서 ‘경영상의 어려움’은 인정하면서도 회사 측의 신의칙 항변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아시아나항공은 2010년 워크아웃에 들어갔고 2013년에도 적자를 기록한 바 있다. 법원은 “회사의 자본금이 8000억원이 넘는다는 점, 상여금을 통상임금에 포함하면 연 93억원의 추가 지출이 예상되지만, 이는 전체 인건비(6817억원)의 1.3%에 불과한 점” 등을 이유로 제시했다.
이 사례들을 비교해보면, 법원은 회사의 재무상태 뿐만 아니라 매출액·자본금을 비롯한 회사의 전반적인 경영상태를 살펴 중대한 경영상 어려움 여부를 판단하고 있다고 유추할 수 있다.
이와 별개로 통상임금의 의미가 불명확한 근로기준법이 위헌이라는 헌법소원이 진행됐지만, 지난 9월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이에 앞서 삼화고속과 한국GM 직원들은 통상임금에 식비와 성과급, 상여금 등을 포함시켜야 하고 이를 기준으로 추가 근무수당을 산정해 임금을 더 줘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이에 두 회사는 소송 과정에서 법이 정한 통상임금의 의미가 불명확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한 것이다.
근로기준법 56조에는 사용자가 연장근로와 야간근로, 휴일근로에 대해 “통상임금의 100분의 50 이상을 가산하여 지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 ‘통상임금’에 대한 세부적인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헌법소원을 제기한 회사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헌재는 “각자 근로의 종류와 형태가 다르고 사업장마다 임금 지급 조건이나 명칭이 매우 다양해 무엇이 소정근로의 대가에 해당하는지를 법률에서 일률적으로 정해놓기는 곤란하다”며, “법관의 보충적 해석을 통해 무엇이 통상임금에 해당하는지 합리적 해석 기준을 얻을 수 있는 만큼 해당 조항은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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