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이 달랐다. 지난 주말 종영한 케이블방송 tvN의 드라마 ‘미생’ 이야기다. 마지막까지 달달한 판타지는 없었다. 시저의 것은 시저에게, 정규직의 것은 정규직에게. 마지막 회라고 해서 계약직 장그래에게 정규직 전환따위의 ‘선물’은 던져지지 않았다. 차디찬 물속에서 천년을 견디면 이무기조차 용으로 승천한다는데, 바둑판 아닌 현실의 미생들에게 완생으로 솟아오를 엘리베이터 같은 것은 없었다.

생각해 봤다. 장그래같은 ‘고졸 남자’가 대우, 삼성, 한화는커녕 10위권 밖 종합상사에 계약직이나마 턱걸이하기가 부자 천국 가기보다 쉽지 않을 일이다. 그 험하고 까탈스럽고 이기적인, 배제와 포용의 판에서 2년이라는 계약기간을 채우고 살아남은 것은 신통방통, 놀랍다는 말조차 차마 마음아프다. 무역지식 하나, 외국어 한 줄, 하다못해 급한 불 한 번쯤 꺼달라고 부탁할 ‘선배님’ 하나 갖추지 못한 장그래가, 커피 타고 복사기 만지는 일이 아니라 ‘그들 중의 하나’로 국적 불명의 말이긴 하지만 ‘상사맨’으로 자리잡고, 마침내는 수많은 동료 직원들의 동료애와 지지를 확보해 내는 일은 눈물겨운 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그러나 여기까지다. 꿈을 깨고, 눈을 부비며, 호박마차라도 잡아타고, 현실로 돌아올 시간이다. 아슬아슬 손에 잡힐 듯하던 ‘정규직 승천’은 도로아미타불, 장그래는 예정대로 강제퇴직이다. 처음부터 그렇게 되기로 정해졌던 ‘게임의 룰’, 그대로 마무리되는 것이다.

태생이 단순한 덕이다. ‘미생=계약직, 완생=정규직’의 구도를 탄탄하게 만들어 놓고 띄엄띄엄 드라마 소식을 듣다가는, 결국 종영 후에야 ‘완생이 없다’는 걸 알아차렸다. 계약직에는 정규직, 하청업체에는 원청업체(특히 노조가 있는). 이 사회에 언제부터 이런 ‘피안’같은 대립항이 자리하지만, 그 피안은 젖과 꿀이 흐르는 낙원이었던 적이 없었다.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도 매일같이 바위를 몰고 산등성이를 짚어올라가는 어쩌지 못하는 존재들의 땅이다. 드라마 속 오 차장의 말처럼, 결과를 알면서도 승부를 이어나가는 사람들처럼 말이다. 이 땅의 언어로 설명하자면, 정규직조차 쉽게 해고해야 개신개신 ‘2015년의 위기’를 넘길까 말까 하는 사회라는 말이다. 내가 우리말을 배운 후 ‘위기’가 아닌 때는 단 한 번도 없었고, 대부분의 위기조차 조타수나 생사여탈권을 쥔 높은 분들의 잘못으로 촉발되었지만 말이다.

그러니 할 수 없다. 원인터내셔널 영업3팀 출신 직원들이 새 회사 ‘이상’네트웍스에서 패자부활전으로 재회하던 장면이나 무한반복 돌려봐야겠다. 환희의, 감사의, 안도의 포옹. 온기를 나누며 함께 살아있음을 확인하기. 그런 꿈을 꾸는 수밖에 없겠다. “끼륵끼륵” 제대로 된 어른이라면 잘 내지 않는 그런 이상한 소리나 내뿜으면서, 바보처럼 겅중겅중 뛰어대기만 해도 말이다. 그나마 ‘리얼’하다고 해도 현실과는 살짝 ‘사각’을 만들어내는 드라마가 이래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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