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수력원자력(이하 한수원)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이어지면서 원전 안전에 대한 불안감이 확산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더 큰 문제는 한수원의 안이한 인식이다. 수비력에 대한 질책이 이어지고 있는데, 대량실점 한 것은 아니라고 항변하는 한수원의 모습은 한심하기 이를 때 없다.

한수원에 대한 사이버 공격이 있었다는 사실은 ‘원전반대그룹(Who am I)’이 한수원 전현직 직원의 개인정보를 지난 15일 블로그에 올리면서 알려졌다.

그러나 한수원은 이 공격에 대해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들만한 행보를 보였다. 개인정보 유출 2일 후인 17일 일부 언론에서 한수원 직원 1만799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는 보도를 하자, 이튿날인 18일 ‘설명자료’를 통해 “이번에 유출된 개인정보는 임직원 찾기, 경조사 알림 등을 위한 사외 인터넷망 임직원용 서비스 자료로 추정됩니다. 현재 관련 사이트를 잠정 폐쇄하고 유출 경위를 정밀 조사중입니다”라고 밝혔다.

일부 언론에서는 이때만 해도 한수원이 이 사건을 외부 해킹이 아니라 내부 직원에 의한 정보유출이라고 주장한 사실을 보도했다. 그리고 “사내 업무망과 사외 인터넷망을 완전하게 분리하여 운영중입니다. 업무자료는 사내 업무망에 접근통제, 암호화, 이중인증 등을 통해 안전하게 보관하고 있습니다”라고 안전에 대해 호언장담했다.

그러나 원전반대그룹이 18일 월성 1호기와 고리 1호기의 배관 도면, 원전제어프로그램 해설서 등 6개 파일을 공개하고, 19일 트위터를 통해 원자로 냉각시스템 밸브 도면과 내부시스템 화면 등 9개 파일을 공개하면서 한수원의 해명은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21일에도 월성1호기의 설계도 등 4개 파일을 공개했다.

한수원은 거듭된 기술유출에 대해 “핵심기술이 아닌 일반적 기술자료”라며 “따라서 원전안전에 미치는 영향은 없습니다”라는 해명을 되풀이하고 있지만, 이미 한수원의 인식과 피해범위가 달랐다는 사실이 밝혀진 뒤여서 신뢰를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에 처했다.

물론 정부의 설명대로 “원자력 안전에 영향을 주는 원전 제어망은 사내 업무망이나 사외 인터넷 망과 완전히 분리된 단독 폐쇄망으로 구성되어 사이버 공격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고, “원전제어망은 단방향 통신으로 구성되어 인터넷망으로부터 네트워크를 통해 절대 접속할 수 없음”은 사실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적인 조치를 초월하는 것이 보안관념 없는 인간의 활동이다. 정말로 인트라넷망이 폐쇄적이었다면, 이곳에서 나온 기술자료는 보안관념 부족한 한수원 직원들이 인터넷과 인트라넷을 오가며 악성코드를 자기도 모르게 옮기는 등의 행위가 있었을지 모른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어느 정도 보안시스템을 갖춘 제조업체 정도만 되도 이 정도 행위는 사내 보안팀에게 진작에 적발됐을 것이다.

마음먹고 하는 공격을 막기는 어렵지만, 사건의 심각성에 비해 한수원의 대응속도나 반응 태도는 한심하기 이를 데 없다. 원전에 대한 불안감을 조성한 것은 드러나지 않은 해커의 소행이었지만, 원전이 이토록 위험한 공격에 노출되도록 방치한 한수원의 책임 또한 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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