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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茶具는 종합예술, 마음 가는대로 즐깁니다” 차 본고장 중국도 겨냥…동원다구연구소 정혜주 소장

기사입력2015-01-03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차인들에게 최고 품질로 인정받고 있는 동원다구연구소 정혜주 소장. 왼쪽은 함께 전시장을 운영 중인 부인 고연추 향사. ©중기이코노미

“좋은 차, 좋은 그릇과 좋은 물이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좋은 심성으로 차를 잘 우릴 수 있는 좋은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을 “도구 만드는 사람일 뿐”이라고 겸손하게 말하던 동원다구연구소 정혜주 소장은, 좋은 차를 즐기는 법에 대해 조언을 부탁하자 이렇게 말했다. “차를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즐길 수 있지만, 물맛을 알고 즐기면 또 다른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다구(茶具)란 차를 마시는데 사용하는 도구를 의미한다. 찻잔과 잔받침 등을 먼저 떠올릴 수 있는데, 이외에도 다양한 도구가 사용된다. 불을 피우고, 물을 끓이고, 차 잎을 갈고, 찻물을 우리는 과정 하나하나에 쓰이는 도구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쓰임이 다르고, 그에 따라 재료도 다르고, 따라서 생김새도 제각각이다. “차도구는 종합예술”이라고 일컫는 이유다.

정 소장은 화로와 솥, 주전자 등 다양한 차도구를 만드는 장인이다. 스스로를 ‘장이’라고 소개하지만, 개인전을 세 차례 열었고 크고 작은 박람회와 전시회, 초대전 등에 100여 차례 참가했다. 하지만 정 소장은 자신의 디자인을 지키기 위한 의장등록조차 “준비를 했는데 아직 내지는 않았다”고 말할 정도로 무심하다. “모두 우리의 전통문화이고 우리 것이기 때문에, 꼭 특허를 내거나 의장을 내야 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자기 기술껏 하다보면 될 일”이라고 여겨왔기 때문이다.

중국과 일본에까지 이름이 알려진 차도구 장인이 탄생한 것은 우연 아닌 우연의 결과였다. 과거 나무와 돌을 다루던 공예인이었던 정 소장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면서 도전에 나서게 된 것이다.

©중기이코노미

돌과 나무를 다루던 공예인, 차를 만나고 차도구 장인이 되다

정 소장은 20대 초반부터 시작한 공예일을 벌써 30년 넘게 해오고 있다. “처음에는 목공예를 시작했다. 수석과 수석받침, 연출물 등을 제작하는 일을 시작했다”고 한다. 수석 공예일을 하면서 서각과 괴목가공을 함께 배우게 됐다. 지금도 서각협회 상임이사 일을 하고 있다. 그러다 우연한 계기가 생겼다. 차를 즐기는 한 지인이 차도구를 가져와서 “이것과 같은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부탁을 해온 것이다.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먹고, 녹차는 티백으로 우려 마시던 시절이었다. 차도구도 다양하지 않아 일본에서 수입해왔다. 돌과 나무로 공예를 하던 정 소장에게 차를 즐기던 지인들이 직접 제작을 의뢰한 것은 어찌 보면 필연적인 일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정 소장에게는 “앞으로는 차도구가 각광받을 것”이라고 느낄 수 있는 감각이 있었다. 돌과 나무로 하는 공예가 손에 붙은 정 소장에게 차도구 만드는 일이 특별히 더 어려울 것은 없었다. 이 과정에서 그도 자연스레 차에 입문하고 차를 즐기게 됐다.

초기에는 주로 나무와 돌을 이용해 차도구를 만들었다. 정 소장의 예상대로 1990년대 들어 다도가 큰 인기를 끌게 됐고, 차도구 시장도 점차 커졌다. “시서화(詩書畵)가 쇠퇴하는 와중에 수석과 서각일이 줄어든 반면, 차도구 제작일은 계속해서 늘어났다”고 정 소장은 회고했다.

이후 1990년대 후반부터는 금속을 이용한 차도구 제작에 나서게 됐다. 동원다구의 대표작 중 하나인 찻자리용 무쇠솥도 그렇게 세상 빛을 보게 됐다.

무쇠솥으로 물을 끓이면 온도관리가 잘 되기 때문에 차맛도 다르고, 철분이 우러나와 몸에도 좋다. 하지만 무쇠솥 대부분을 일본에서 수입해 쓰고 있었다. 한국과 일본 간에 기술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정 소장에 따르면 일본에는 주물 장인과, 금속의 길을 들이는 장인이 따로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우리나라에는 수년 전 지방무형문화재로 무쇠를 주물하는 장인이 나오기는 했으나, 국가무형문화재에는 주물장인이 없었다. 자연히 일본의 금속 솥이나 주전자를 이용하는 소비자들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시장에서 무쇠솥을 사다 물을 끓이면 새까맣게 되고 쇠 냄새가 나서 먹지를 못했어요. 왜 이럴까 의문을 갖고 연구를 시작한 것이 무쇠솥을 만들게 된 계기였죠”

4년이 넘는 기간 동안 실패를 거듭한 끝에 1990년대 후반 마침내 찻물 끓이는 무쇠솥을 완성하게 됐다. 지금은 태평양오설록과,순천대·전남도립대, 농촌기술센터, 녹차연구소 등에 정 소장이 만든 솥이 납품돼 있다. 통도사, 화엄사, 선운사, 백련사 등 명찰들은 물론 작은 암자도 그의 무쇠솥을 가져다 쓰고 있다.

차도구 제작을 해야겠다고 일찍이 작심한 감각은 다방면으로 뻗어나갔다. 전기화로가 보편화된 이후에는 자동 온도조절기가 달린 화로를 개발하기도 했다. 찻물은 한번 뜨겁게 끓인 후 다시 식혀서 사용하는데, 물이 지나치게 식어버려도 사용할 수 없고 재차 뜨겁게 끓여도 사용할 수 없게 된다. 일정 범위 안에서 물의 온도를 조절하는 이 화로는 시장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부터는 무쇠 주전자를 중국에 수출할 준비도 하고 있다. 정 소장은 “중국은 차 마시는 문화가 일상이 돼 있다. 또 좋은 차도구를 이용하는 문화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지금이 바로 중국 차 시장 진출 적기”라고 말했다. 2014년 11월에는 중국 광저우에서, 12월에는 선전에서 전시회도 개최했다.

2012년에는 대구 수성구 노변로에 전시장도 마련했다. 다양한 차도구들을 모은 전시장과, 차 문화를 즐기는 체험학습장 등으로 이용하고 있다. 차 문화 확산에도 기여하고 있는 것이다. 정 소장은 “열심히 일만 해왔는데, 어느새 일에 대한 사명감을 크게 느끼고 있다”며, “좋은 차도구를 잘 만들어 중국 시장에서 꼭 성공하겠다”는 새해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