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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황 그렸는데…” 기술금융의 음과 양 금융당국 강력한 드라이브, 현장 체감온도는 “아직”

기사입력2014-12-31 09:22

김창훈 기자 (ckim2014@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기업은행이 소속부서인 기술금융부에 대한 성과평가를 하면서 대출·투자 등의 수익성 지표를 포함한 사실을 금융감독원은 잡아내고 12월29일 제재조치를 내렸다. 기술금융 담당직원이 대출 실적 등의 부담을 지고 업무에 임하면 적극적인 심사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기술금융 활성화를 향한 금융당국의 강력한 의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전국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는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이라는 코너가 있다. 이곳을 클릭하면 흡사 보험대리점 실적표처럼 기술신용대출 건수와 금액이 그래표로 공개돼 있다. 이 상황판 공개 이후 전체 기술금융 실적이 껑충 뛰었다는 후문이다.

©중기이코노미

‘독한 신제윤’ 금융당국 강력한 드라이브

올해 중기금융의 화두는 기술금융이었다. 기술금융은 재무상태나 담보가 아닌 보유기술을 근거로 평가해 자금을 지원하는 금융으로, 주로 담보여력이 부족한 중소·벤처기업이 수혜주다. 물론 정부의 강력한 의지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금융기관 입장에서 개념도 생소한 ‘기술신용정보’보다는 담보나 신용등급을 볼모로 대출을 해주는 것이 속편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기술금융 실적은 규모를 계속 키워오고 있으며, 내년에는 기하급수적으로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독한 신제윤’으로 대표되는 금융당국의 강력한 드라이브가 깔려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연초 벽두부터 이른바 ‘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한 포문을 열었다.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1월3일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기술평가시스템은 창조경제·창조금융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라고 강조했다.

4월10일 창업·벤처기업인 간담회 자리에서는 “(기술평가시스템 구축 등이 전제된다고 해도) 기술금융이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선 은행이 대출에 적극적이어야 하고, 이를 위해 은행과 직원의 면책 범위를 넓혀야한다”고 판을 깔아주기도 했다.

같은달 16일에는 ▲기술정보 데이터 베이스(Tech Data Base, TDB) 설립(이후 은행연합회 기술정보부로 확장) ▲기술신용평가기관(TCB) 도입 및 정책금융 연계 대출 때 TCB 평가정보 활용 의무화 ▲TCB 활용 대출 면책규정 명시 및 실적 반영 등을 골자로 하는 기술신용평가시스템 추진방안을 발표했다.

이러한 과정을 거쳐 7월1일 기술금융이 본격화됐다. 18개 은행은 이날부터 기술보증기금의 보증을 받은 기업에 대출하거나 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을 취급할 때 의무적으로 기술신용정보를 활용하도록 했다. 기업이 보유한 기술정보와 신용정보를 결합·평가해 기술신용등급을 산출하고 의뢰인에게 제공하는 TCB도 출범했다. 기술보증기금, 한국기업데이터, NICE평가정보 등이 그 역할을 하고 있다.

신 위원장은 8월7일 기술금융 현장간담회에서 “향후 3년 내에 기술금융이 뿌리를 내리도록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재확인했다. ”1995년 신용정보법 제정에서 1998년 신용대출 본격화까지 3년이 걸렸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TCB 기반 신용대출에 대한 최대 3%p 이차(利差)보전 ▲산은·기은 기술신용 대출상품의 획기적 확대 ▲미래부·산업부·특허청 합동 제도적 인프라 정비 ▲금융기관 이공계 전문인력·조직 확충 유도 등 로드맵도 내놨다.

9월16일에는 ‘기술금융 종합상황판’을 10월부터 가동한다고 밝혔다. 기사 모두에 언급한 그 상황판이다. 이를 통해 실적이 좋은 은행을 우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부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적법 취급된 대출을 제재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는 면책 방침도 내놨다. 당근과 채찍, 그리고 면책조항이라는 ‘보조제’를 통해 기술금융 활성화를 견인하겠다는 것이 정부의 방침이다.

‘무늬만 기술금융’ 아쉬움도 많아

기술담보 대출과 관련한 기업의 가장 큰 애로사항

<자료=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그러나 현실은 그다지 녹록지 않다.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가 8월13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3년내 기술담보 대출을 받은 기업 중 ‘금융기관 자체 평가에 의한 기술담보 대출’을 받은 기업은 19곳(6.7%)에 불과했다. 기술보증기금을 통한 융자(206곳, 73.0%)나 정부 정책자금 제도와 연계한 융자(51곳, 18.1%)가 대부분이었다.

기술담보 대출과정에서 기업들 절반 가까이(43.0%)는 ‘기술력 이외에 부동산이나 재무현황 등 별도의 내용을 요구하고 있다(43.0%)’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절차가 복잡하고 준비사항이 많은데다(26.2%), 지식재산권 등 기술가치 평가가 미흡(12.6%)해 애로를 겪고 있다는 입장이었다.

10월21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의하면 TCB 기반 대출을 받은 기업의 40% 가까이가 기술등급 T6(전체 10단계 중 6단계) 이하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은행이 실적 부풀리기를 위해 ‘무늬만 기술금융’ 대출을 실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었다. 이 자료에서 최고 등급인 T1(우수) 등급을 받은 기업은 없었고, T2(우수) 등급도 7개(1.1%) 기업에 불과했다. T3(양호) 등급은 69개(11.7%) 기업, T4(양호) 등급은 140개(23.5%)로 우수와 양호를 합해도 216개(36.5%)에 불과했다.

이들 592개 기업 중, 기업은행이 자체적으로 평가하고 있는 등급보다 기술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은 무려 400개(67.6%)로 파악됐다. 이들 중 기술등급 T6 이하를 받은 기업은 198개(49.5%)로 절반에 달했다. 결국 기존에 거래하고 있는 우량기업들을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로 전환해 ‘실적 부풀리기’를 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왔다.

11월10일 기보가 연 세미나에서 한성대 김상봉 교수가 공개한 자료도 유사했다.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은 지난 7월과 8월 사이 1661건, 1조1400억원을 기록했지만, 은행 자율 대출 건수는 225건으로 전체의 13.5%, 대출금액은 1600억원(14%)에 그쳤다. 건수 기준으로 은행 제출 전망치의 1/7을 하회하는 수준이라고 김 교수는 지적했다.

연도별 기술신용평가 기반 대출건수 실적 및 전망

<자료=‘2014 기술금융 세미나’ 자료집>

반면 정책금융의 의무활용 비율은 1436건이었다. 이중 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에 따른 실적이 358건 6050억원, 기보의 보증에 따른 실적은 1078건 4000억원 수준이었다. 정책금융공사의 온렌딩에 따른 대출은 건수 기준으로 1/5 수준이었으며, 기보 보증부 대출은 전망치의 1/4 이상을 기록하고 있었다.

새정치민주연합 김기식 의원이 지난 10월 기보로부터 받은 ‘기술평가인증서 연계 금융기관의 신용대출 현황’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중소·창업기업이 기보로부터 기술평가인증서를 받고도 은행에서 대출을 받지 못한 비율이 36%에 달했다. 2011년 95%에 달하던 대출비율은 2012년 88%에서 2013년 64%로 급감했다.

김상봉 교수는 “기존의 평가 방법을 개선하고 새로운 모형을 개발할 전담 전문가들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기술신용평가 수수료도 낮춰야 한다고 덧붙였다.

BBB 등급 나와야 기술금융 지원?

©중기이코노미

기업자금 전문가인 신성범 한경경영지원단 기업자금지원센터장도 중기이코노미 기고를 통해 “시중은행 지점장들이나 실무자들 얘기를 들어보면 지점의 KPI(목표달성 지표) 때문에 기술금융을 취급하려고 하는 것이라며, 기술평가 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대출이 사실상 어렵다”는 현장 중기인의 하소연을 전한 바 있다.

그는 “자체등급이 BBB등급 이상이 나와야 기술금융 지원을 받을수 있다”는 은행의 반응을 전하기도 했다. 중소기업에게 BBB등급은 절대 쉬운 등급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정부가 획기적으로 내놓은 정책인데다 은행들 역시 초기정착을 위해 최대한 지원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정도의 전망을 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