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에서 휴대폰 부품을 수입하는 A사의 대표 B씨는 비자금 조성을 위해 홍콩에 페이퍼컴퍼니(유령회사)를 설립했다. B씨는 중국 제조사로부터 부품을 수입하면서도 서류상으로는 홍콩 페이퍼컴퍼니가 중계무역을 수행하는 것처럼 위장해 수입 가격을 부풀렸다. 이런 방식으로 지난 7년간 147억원을 빼돌린 B씨는 최근 관세청에 덜미를 붙잡혔다.

한국과 홍콩의 조세조약 타결로 이같은 ‘검은 돈’을 적발하기가 수월해질 전망이다. 한-홍콩 조세조약의 정보교환 조항에 따라 양국은 상대국의 조세당국과 금융기관에 조세 및 계좌 정보 요청을 할 수 있게 됐다. 그동안은 홍콩 은행이 비밀주의를 고수하며 계좌에 대한 정보를 내놓지 않아도 손쓸 방법이 없었으나 이제는 국가 조약에 의해 공식적으로 요청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지난 2013년 9월에 타결된 한-홍콩 조세조약은 조세회피와 이중과세를 방지하기 위한 양국 간 협정이다. 한국조세재정연구원 이동규 박사는 최근 기획재정부가 주최한 ‘한국-홍콩 조세조약 및 홍콩의 투자환경 설명회’에서 “홍콩이 조세피난처로 주로 활용되는 만큼 탈세를 줄여보자는 것이 이 조약의 주된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홍콩은 전 세계 자본이 밀집되는 조세피난처 중 한 곳이다. 조세피난처는 법인이 얻은 소득의 전부 혹은 일부를 과세하지 않는 국가·지역을 말하며, 세제 우대가 많고 금융거래의 익명성이 보장되는 것이 특징이다.

조세피난처에도 종류가 있다. 법인세, 소득세 등이 완전히 면제되는 ‘택스 파라다이스’(바하마·버뮤다), 특정한 형태의 회사 또는 사업 활동에 세제 혜택을 주는 ‘택스 리조트’(스위스·룩셈부르크), 국외소득에 대해서는 과세하지 않는 ‘택스 셸터’(홍콩·말레이시아) 등으로 나뉜다. 홍콩은 지리적으로 가깝고 중국 진출이 용이하다는 점 때문에 한국 법인들이 조세피난처로 활용하고 있다.

홍콩 진출 법인의 상당수는 제조업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홍콩 내 한국법인의 업종은 제조업, 전문과학 및 기술서비스업, 금융 및 보험업의 비중이 약 88%(투자금액 기준)를 차지한다. 제조업으로 투자해도 홍콩에 공장을 설립할 의무는 없어, “중국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홍콩법인을 통해 재수출하는 방식으로 홍콩법인에서 수익을 실현하고 있다”고 조세재정연구원 이동규 박사는 말했다.

경제자유도가 높은 홍콩은 매력적인 투자대상국으로 꼽힌다. 법인 설립에 있어 외국인과 내국인의 무차별 정책을 취하고 있으며 자본이득세 및 양도세, 배당소득세 등이 면제된다. 법인세는 16.5%, 근로소득세는 15%로 세계적으로 낮은 수준이다.

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홍콩에 진출한 외국법인은 2014년 6월 기준 7585개다. 매년 3%씩 홍콩 내 외국법인의 수가 증가하고 있으며 이중 한국기업의 수는 약 1500여 개다. 조세재정연구원 박수진 회계사는 “조세조약 발효 후 홍콩 내 한국 법인은 홍콩에서의 조세와 금융거래 내역이 한국 조세당국에 공개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홍콩 조세조약은 국회 비준 과정을 거친 후 발효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