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화에서 빈번했던 시각적 눈속임

실제 그리스시대의 위대한 조각품들은 실존하지 않는 신들을 상상력으로 형상화한 것이고, 르네상스 시대의 트롱프 뢰유(trompe l'oeil)는 표현대상이 진실처럼 보이게 하려는 눈속임에서 출발했다.

이러한 눈속임은 일반적으로 대상을 아름답게 보이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현실의 사실적 재현을 미술의 목표로 삼았던 시대에 눈속임은 가장 자연스러운 표현목표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시각적 눈속임이 아니라 내용에서 지나치게 왜곡되었거나, 아예 사실과 다른 경우도 많다. 이는 역사화에서 빈번하게 나타난다.

예를들면 신고전주의 화풍을 이끌었던 자크루이 다비드(1748~1825)의 작품이 대표적이다. 다비드는 프랑스 미술사상 가장 뛰어난 화가 중 한 명이다. 그는 프랑스의 격변기에 살면서 당시 역사적 상황을 기록한 작품을 다수 남겼다. 프랑스 혁명 때에는 자코 뱅당의 편에서 <마라의 죽음>을 그리며 혁명에 동참했고, 나폴레옹 집권시기에는 그의 각별한 총애를 받으며 <그랑생베르나르 계곡을 넘는 나폴레옹>, <나폴레옹 대관식> 등 나폴레옹과 관련한 작품들을 그렸다.

그런데 이러한 명작들을 역사적으로 보면 진실과는 거리가 있다. 가령 <그랑생베르나르 계곡을 넘는 나폴레옹> 작품은 허구적 설정으로 가득하다. ‘그림에 묘사된 갈기를 휘날리며 부르짖는 백마’, ‘바람에 휘날리는 붉은 망토’, ‘훈남에 가까운 나폴레옹의 외모’는 당시의 사실과는 다르다. 나폴레옹이 알프스를 넘을 때는 추운 겨울이어서 현실에서는 그림처럼 백마를 타고 위엄있게 산을 넘을 수 없었다. 또한 나폴레옹은 부하들이 알프스를 무사히 건너는 것을 눈으로 확인한 뒤에서야 가이드를 따라 산을 넘을 정도로 자신의 안위를 중시했다. 그림 속의 영웅적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이었다. 당시의 상황은 들라로슈 폴이 그린 <알프스를 넘는 나폴레옹 보나파르트> 작품이 더 진실에 가깝다. 백마가 아닌 당나귀를 타고 건너며, 추위와 허기, 불안에 떠는 초췌한 모습이 알프스를 넘어가던 나폴레옹의 모습이다.

다비드의 정치적 입장, 진실 왜곡하기도

다비드의 허구적 구성은 다른 그림에서도 반복된다. 루브르박물관의 대작 <나폴레옹 대관식>과 브뤼셀 왕립박물관의 <마라의 죽음>도 진실과는 다르다. <나폴레옹 대관식>은 그림 속의 위대하고 성스러운 분위기 대신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분위기였다. 나폴레옹에게 대관식의 전권을 빼앗겨버린 교황이 불쾌함 대신 강복(降福)의 예를 취하는 모습으로 그려졌다. 이 그림은 제작기간이 3년이나 소요되었고, 나폴레옹과 갈등으로 대관식 날 노트르담 성당에 없었던 그의 어머니(레티지아)가 삽입되었다. 다비드의 손에 의해서 그림 속에서 만큼은 나폴레옹이 원하는 대관식으로 치러진 셈이다.

다비드의 역사적 왜곡은 <마라의 죽음>에서도 반복된다. 마라의 죽음을 예수 그리스도의 고귀한 희생처럼 그렸지만, 실제 죽음은 비참한 광경이었다. 1793년 7월13일, 마라가 목욕 중에 샤를로트 코르데가 휘두르는 칼로 죽어갈 때 모습은 살기 위해 몸부림친 흔적들로 처참했다. 다비드의 그림보다 같은 주제를 그린 폴 자크 에메 보드리의 작품이 진실에 가까웠다. 다비드가 영웅의 죽음을 애도하는 마음으로 마라를 이상화시켰다면, 보드리는 마라보다 샤를로트 코르데에 초점을 맞춰 그렸다. 작가적 관점에 표현된 진실이 다르다.

미술사의 많은 작품이 역사적 이해와 해석에 따라 진실이 뒤바뀌기도 한다. 다비드는 정치적 입장에서 진실을 의도적으로 왜곡했다. 그런데 이러한 역사적 사실의 진위와 무관하게 다비드의 작품은 여전히 많은 사람의 마음을 훔칠 만큼 매력적이다. 결과적으로 다비드의 탁월한 재능이 역사적 진실을 뛰어넘었다.

밀레의 <만종>과 살바도르 달리

다비드처럼 의도적으로 진실을 왜곡한 그림과 달리 감상자의 주관적 해석에 의해 진실이 왜곡된 예도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장 프랑수아 밀레(1814~1875)의 <만종>이 여기에 해당한다. 언제부터인가 밀레의 만종에는 한 가지 불편한 이야기가 생겼다.

<만종>이 삼종기도의 한 장면이 아니라, 가난한 농부 부부가 배고픔을 이기지 못하고 숨진 아이의 영혼을 달래기 위한 기도 장면이라는 것이다. 원래 바구니 대신 죽은 아이의 관이 그려졌던 것을 나중에 수정했다는 이야기가 사실처럼 회자되었다. <만종>이 지닌 평화로운 분위기를 완전히 깨뜨린 반전이다. 그러나 이 내용은 초현실주의 화가로 유명한 살바도르 달리(1904~1989)의 개인적 상상, 잘못된 직관이 만들어낸 허구이다.

알려진 대로 살바도르 달리는 ‘편집광적 비평적 방법(정신착란 현상을 연상하게 하는 비이성적 인식의 즉흥적인 방법)’을 이용한 그림을 그렸다. 현대 정신의학에서 편집증은 만성적으로 고정된 고도의 체계적 망상이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상태를 말하는데 달리는 이러한 편집증을 자신의 창작방법으로 활용했다. 한마디로 작품을 제작할 때 자신의 강박관념과 욕구를 조직화, 체계화하여 왜곡하는 방법을 추구했다.

밀레의 <만종>에도 이런 망상을 체계화하면서 자신의 직관을 사실처럼 믿게 했다. 달리의 주장은 급기야 1963년 X레이 촬영으로 <만종>을 투시하는 실험을 통해 그 진위를 밝히는 시도까지 이어졌다. 그 결과 바구니에서 사각 형태의 흔적을 발견하긴 했지만, 이것이 달리의 주장대로 죽은 아이를 담은 관이라는 근거는 어디에도 없었다. 그러나 이러한 과학적 접근에도 불구하고 많은 자료에서는 아직 달리의 망상을 사실처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몇 년 전 국내 방송에서 인기리에 방영한 <바람의 화원>이라는 드라마에서 신윤복을 남장여자로 각색한 내용 때문에 신윤복을 여자로 오해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자칫 역사적 진실에 소홀하다 보면, 보는 사람이나 장소(외국인, 해외방송, 역사적 사실에 무관심한 경우)에 따라 신윤복을 여자로 인식할 수 있다. 가벼운 픽션이 역사의 사실을 팩션으로 바꿨다.

현대미술에서는 한층 다양한 팩션적 이미지가 등장한다. 우리가 보고 듣는 모든 것이 가상도 실제도 아닌 모호한 것들로 넘쳐나면서 진실과 거짓의 기준이 더욱 불투명해졌다. 특히 표현매체의 확장과 다양성으로 팩션적 이미지가 증폭되고 있다. 사진의 사실성과 기록성의 해체는 물론 사회·정치적 해석까지 뒤흔드는 작품으로 작가적 해석에 따른 실재와 허구의 관계가 공존하는 작품들이 범람하고 있다. 현대 미술에서는 작가관이나 관람자의 해석으로 언제든지 새로운 팩션이 만들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글=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 미술평론가(jpdad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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