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청은 지난 8일 시책설명회를 통해, 법이 정한 공공기관의 중소기업 제품 구매를 확대하기 위해 보다 강제력 있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제도는 사실상 유명무실화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중소기업이 아닌 다른 제품을 구입한 뒤 중소기업 식별번호를 붙일 경우 처벌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이 행위를 했다는 사실이 밝혀진 청와대의 경우, 이 사안에 대해 누구도 책임지지 않았다.
최근 새정치민주연합 최민희 의원에 따르면 지난해 국정감사 당시 조달청으로부터 받은 ‘대통령 비서실 및 국가 안보실 물품취득원장’을 분석한 결과, 청와대가 실제로 구입해 보유하고 있는 물품의 자산명과 이를 관리하기 위해 부여하는 식별명 및 식별번호가 다른 경우가 779건에 달했다는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청와대가 구입한 가구는 대부분 ‘한국가구’ 제품이다. 청와대는 이 회사로부터 침대, 식탁, 책상, 서랍장, 책장, 의자, 화장대, 장식장 등 39개의 가구를 5537만6500원에 구입했다. 669만원 짜리 침대와 545만원에 구입한 책상, 213만원 짜리 서랍장 등도 있었다.
문제는 이들 가구에 부여된 식별번호가 모두 다른 브랜드의 가구였다는 점이다. 198만4000원에 구입한 수납장의 경우 식별번호가 중소기업 가구로 둔갑했고, 에이스나 한샘 등의 식별번호가 부여된 사례도 있었다.
청와대는 최 의원실의 질의에 대해 “새로 산 물품이 조달청 식별번호에 등록돼 있지 않아서 유사한 물품의 식별번호를 붙인 것”이라는 해명을 구두로 내놓았다고 한다.
최 의원실은 이에 대해 물품목록정보법을 근거로 “청와대가 기존 조달청 물품목록에 없는 물품을 보유하거나 취득하려고 하면 해당 물품에 대해 조달청장에게 자료를 보내 목록화하도록 요청해야 하고, 이같은 요청에 따라 조달청장은 식별번호 부여 등의 조치를 해야 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청와대가 법을 위반했다는 의미다.
최 의원은 이에 대해 “용도가 의심스러운 물품을 구입하거나 호화성 고가의 물품을 구입한 사실을 감추기 위한 거짓 자료 작성일 가능성이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그 누군가가 이 사안에 대해 책임졌다는 소식은 아직까지 들리지 않고 있다. 이것이 공공기관에게 관련법규정을 무시하고 마음대로 물품을 구입한 뒤 중소기업 식별번호를 붙이는 방법이 있다고 알려주는 것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 윗물이 이리도 맑으니 아랫물이 얼마나 청정할지 상상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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