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을 누비는 수천대 광역버스 중 10대 내외는 뒤쪽의 출입구를 폐쇄하고 그 자리에 좌석을 집어넣은 ‘변종’ 버스들이다. 밖에서 볼 때 뒷문과 승하차용 계단이 들어설 자리는, 안에서 보면 그냥 좌석들이다. 덕분에 고속버스나 M버스처럼 앞으로만 승하차가 가능해졌다. 지난해 7월 정부가 광역버스 입석금지 조치를 내리면서 버스회사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좌석수를 늘린 고육책이었다. 물론 정부의 허락을 받은 합법적 개조였지만, 반년가량이 지난 지금 이 버스들은 ‘이도저도 아닌’ 이상한 존재들이 됐다. 정부가 금세 말을 바꿔 입석금지를 풀어 이런 개조가 불필요해진데다, 다시 좌석을 뜯고 원위치하는 수고와 비용을 들일 명분과 실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런 버스가 10대 내외에 불과한 이유다.

올림픽대로 동작대교 부근을 지날 때면 강 건너 이촌동에 난데없이 솟아난 거대한 규모의 건축물을 볼 수 있다. 눈여겨 본 사람이라면 ‘난데없다’는 말에 쉽게 공감할 것이다. 주변 아파트들을 발 아래로 내려다보는 압도적 높이와 크기, 뒤편 남산의 신록을 가로막는 어두운 외관은 매우 기형적이어서 비현실적이기까지 하다. 삼성이 짓고 있는 새 아파트,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한강 르네상스’ 정책 덕분에 가능해진 56층짜리 초고층 주상복합 아파트다. 대한민국에서 차지하는 삼성의 위상만큼이나 이 아파트가 이렇게 ‘독보적’ 위용을 자랑할 수 있게 된 것은 후임 박원순 시장의 층수 규제 덕분이다. 35층 안팎의 층수 가이드라인이 제시되면서 나머지 아파트들에 대비되는 강력한 ‘희소성’을 갖추게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르겠다. 이런 초고층 아파트들이 호위무사처럼 남산과 한강을 둘러싸고 있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숨이 막힌다.

이들은 규제, 혹은 정책에서 차지하는 철학의 중요성을 반증하는 사례들이다. 수용자 입장은 고려하지 않은 ‘하루 아침’식 규제와 이보다 더 ‘흔쾌한’ 풀어주기가 버스 이용객들과 사업자·종사자들의 불편, 그리고 기형적 형태의 버스를 낳았다면, 밑도 끝도 없는 풀어주기와 ‘스펙터클’ 위주의 정책은 의도치 않은 ‘특혜’와 ‘기형’ 시비에 이어, (소비에트 치하의 폴란드 수도 바르샤바가 아닌) 21세기 자유주의 국가의 대도시에서라면 좀체로 보기 힘든 광경을 부르게 됐다. 규제완화의 광풍이 한창인 2015년이 지나면, 언젠가 우리 사회가 이런 기형적 부산물들로 넘쳐나지 않을까 두렵다. 정권이 바뀌고 정책이 바뀐다해도 국민과 국토는 이 자리에 그대로 남는다. 꼼짝없이 살아남아 모든 변화와 변덕을 목도하고 감내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설거지까지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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