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전 대통령의 회고록 출간이 정계를 발칵 뒤집어놨다. 세종시 수정안 관련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에 대한 언급을 놓고 청와대가 민감한 대응을 보였고, 한미FTA와 쇠고기 수입개방을 놓고 고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언급은 사실과 다르다는 참여정부 인사들의 반발을 사고 있다. 회고록 출간이 정치적 논란으로 이어진 사례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경우는 파장이 남다르다. 현대건설 사장 출신 대통령이라 그런지, 마케팅전략 차원에서 참고할만한 모습이 엿보인다.
먼저, 마케팅은 타이밍이라는 점을 들 수 있다. 회고록 출간일인 2일에는 여당 원내대표 경선이 열린다. 이를 두고 정치권의 해석이 다양하지만, MB측의 설명대로라면 이는 그저 우연히 벌어진 일이다. 1월 초에는 감사원이 자원외교로 인한 손실 발생을 문제삼아 에너지공기업에 대한 제재조치를 취하면서, 국회에서도 자원외교에 대한 공과를 따지고 있었다. MB정부가 핵심치적이라고 내놓았던 자원외교가 사실은 성과없이 혈세만 낭비한 사업이었다는 평가까지 나온 와중에 회고록이 출간됐으니, 관심이 높아지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국회에서 자원외교에 대한 조사일정이 어떻게 잡힐지는 모르겠지만, 회고록의 화제성이 당분간 유지될 수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가능하다. MB측은 이 모든 것이 우연의 일치라고 설명하는 모양이지만, 마케팅전략상 이보다 더 좋은 출간 시기는 없다.
둘째, 적절한 사전공개는 화제성을 키울 수 있는 좋은 수단이다. 출간 예정일에 앞서 지난 1월28일, MB측은 회고록 주요 내용을 언론사에 공개했고, 출간 하루전으로 예정됐던 기자간담회도 30일로 앞당겨 열었다. 그 결과 출간을 바로 앞둔 주말 뉴스의 머리꼭지에 회고록 관련 내용이 들어갔다. 음악이나 영화, 도서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사전공개 마케팅은 자칫 잘못하면 세간의 관심을 떨어뜨리는 결과를 낳기도 한다. 그러나 MB의 회고록은 사전공개를 통해 화제성을 더욱 키워내 마케팅 효과를 톡톡히 누렸다.
셋째, 반대의견 역시 마케팅에 도움이 된다. 협동조합 형태로 설립된 민간연구원 ‘지식협동조합 좋은나라’는 MB의 회고록에 반론을 제기하는 듯 ‘MB의 비용’이란 책을 출간한다. 조세재정전문가와 언론인, 시민운동가 등이 참여하는 이 책은 MB정부 시기 발생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을 지적하는 책이라고 한다. MB측이 회고록을 통해 밝힌 ‘사실’이, 사실은 ‘주장’일 뿐이라는 것이 반대측의 참전 이유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의견을 밝힐 때 주장이 아니라 사실이라고 말하며 당당한 태도를 취하는 것, 이를 통해 반대의견을 촉발시키고 두 주장이 대립하는 것은 자칫 제품의 신뢰도를 떨어뜨리는 효과를 낳을 수도 있다. 하지만 MB의 회고록은 ‘반론’을 불러일으켰고, 이제 두 책을 비교하기 위해서라도 MB의 회고록에 대한 관심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마지막으로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이 모든 마케팅이 나 자신 또는 우리 회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소비자를 위한 것이라는 관점이다. 남북관계의 내밀한 사정, 외교적으로 민감한 사안들을 낱낱이 밝히면서 “국민들도 알 때가 됐다”고 밝혔다. 국가기록물 관련 법을 위반했다거나, 외교적인 관례가 아니라거나, 현재 국익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 정도는 알 권리 앞에 무력화할 수 있다. 논란을 일으키는 마케팅을 통해 거꾸로 치명적인 상처를 입는 기업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다 국민을 위한 것이라는 MB는 회고록 마케팅에서 이미 성공한 듯하다. 물론 판매량이 높다는 것이 회고록 출간의 성공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모든 기업의 제품이 판매된 뒤 소비자의 평가라는 심판대에 오르듯이, MB의 회고록은 동시대를 산 국민들에게 당시의 기억과 현실의 삶이라는 잣대로 평가받게 될 것이다. 마케팅이 성공한다고 제품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한번 떠올릴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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