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정보 유출사건이 또 터졌다. 지금까지의 사건들과는 격이 다르다. 2012년 KT, 지난해 카드사 3사의 개인정보 유출건은 해킹으로 인한 피해였다고 하지만, 이번 홈플러스 사태는 훨씬 악의적이고 조직적이다. 보험사에 팔아 먹기 위해 고객정보를 ‘고의적’으로 빼돌렸다.

홈플러스가 소비자들의 개인정보를 팔아먹은 수법은 두 가지였다. 2011년 말부터 2014년 7월까지 11차례에 걸쳐 경품행사에 응모한 고객의 개인정보 712만 건을 보험사 7곳에 팔아넘겨 148억원을 챙겼고, 회원카드를 발급할 때 기입하는 개인정보 1694만 건을 보험사 2곳에 팔아 83억원을 챙겼다. KT와 카드사 3사의 개인정보 유출 때는 “해킹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라는 변명이라도 내놓을 수 있었지만 이번엔 명백한 위법행위를 저질렀다. 홈플러스 사장과 관련 임직원 6명은 불구속 기소된 상태다.

녹색소비자연대와 금융소비자원은 홈플러스에 대한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공동소송’ 참여자 모집을 시작했다. 금융소비자원은 신고 결과를 검토해 공동소송 진행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소비자센터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에 집단소송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경실련은 “지난해 카드사 및 KT 개인정보유출 사태가 발생했을 때 이미 개인정보 유출 문제에 대해서는 집단소송제도 도입 등 정부 차원의 강도 높은 대책마련을 주문한 바 있었다”는 점도 상기시켰다.

금소원 등의 공동소송과 경실련의 집단소송은 외양은 비슷해도 실제로는 큰 차이가 있다. 공동소송제도는 한 소송에서 원고나 피고의 어느 한쪽 또는 양쪽의 당사자가 2인 이상이 되는 소송으로, 판결효력이 소송에 관여한 자에게만 발생한다. 반면 집단소송은 여러 피해자 가운데 대표자가 나서 소송을 진행하는 소송으로, 판결효력이 소송에 관여하지 않은 자에게도 발생한다. 한 마디로 집단소송에서는, 원고측의 대표자가 승소하면 소송에 참여하지 않았던 피해자들도 보상을 받는다. 소비자의 권리를 강화하고 기업들에겐 경각심을 줄 수 있는 제도다. 이번 홈플러스 건처럼 소비자들을 만만하게 보는 행태에는 가장 적합한 철퇴다.

얼마전 열린 ‘미국과 한국의 집단소송 현황과 대응방안 세미나’에서는 “우리나라에는 집단소송이 가능한 분야가 증권밖에 없어 기업 입장에서 큰 부담이 되지 않지만, 미국은 집단소송의 범위가 광범위 하기 때문에 특히 한국기업들의 특별한 주의가 요구된다”는 이야기가 줄곧 나왔다. 그만큼 이 분야에서는 우리 법제도가 기업친화적이라는 의미다. 

우리나라에 집단소송제도가 도입된 것은 2005년. 2005년 국내 최초로 ‘증권관련 집단소송법’이 제정·시행됐지만 지난해까지 10년 동안 나온 집단소송은 8건에 그친다. 여기에는 까다로운 소송 허가 조건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집단소송의 경우 구성원(손해의 보전에 관해 공통의 이해관계를 갖는 각각의 피해자)이 50인 이상이어야 소송이 허가된다. 반면 미국은 구성원 수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피해를 일으킨 행위라면 ‘분야에 상관없이’ 소송 요건만 갖춘다면 소송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집단소송제도는 기업이 일으킨 피해에 소비자들이 직접적인 보상을 받을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다. 집단소송 도입으로 지난 10년간 국내 소비자들의 권리가 강화됐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증권관련 집단소송의 실효성이 뚜렷하지 않아 실효성이 의심받는 만큼, 향후 소송허가요건 등을 완화해 피해자를 제대로 구제할 수 있는 집단소송 제도가 나오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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