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대표 및 인사담당자를 대상으로 지난 6일 개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설명회’.   ©중기이코노미

“결국 소송하라는 얘기 같아요. 고용노동부는 책임지지 않을 얘기만 하는 것 같군요” 

지난 6일 서울 여의도 중소기업중앙회 릴리홀. 이날 열린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설명회’에 참석한 한 기업의 인사담당자는 “설명회에서 소송을 피할 방법을 찾고자 했는데, 오히려 소송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느꼈다”며 난처해했다.

연자로 나선 고용노동부 임금근로시간 개혁추진단 강검윤 사무관은 지난달 23일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가급적 노사간 대화를 통해 합의를 도출할 것을 권한다”며 “소송을 하더라도 하급심에서는 중재 결정을 내릴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설명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이 “소송을 피할 수 없다”고 느낀 이유는 대법원 판결과 이를 기반으로 한 고용노동부의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 안에 문제점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은 자동차 부품업체 갑을오토텍과 근로자 및 퇴직자 간 소송의 판결문에서 통상임금의 정의와 범위를 명확히 했다. “정기적·일률적·고정적으로 지급되는 것인지를 기준으로 그 객관적 성질에 따라 판단하여야” 하며 “임금의 명칭이나 그 지급주기의 장단 등 형식적 기준에 의해 정할 것은 아니다”고 판시했다.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판결에 따른 통상임금 여부 판단요건

<자료=대법원/고용노동부>

소송의 불씨는 ‘노사간에 정기상여금 등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간에 합의한 경우’다. 대법원 판결문과 이에 대한 고용노동부의 설명을 보면 이 문제는 경우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

대법원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노사간 합의를 한 경우에 대해 상반된 두 가지 주장을 함께 판시해 혼란을 가중시켰다. 

 

“사용자와 근로자가 통상임금의 의미나 범위 등에 관하여 단체협약 등에 의해 따로 합의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라는 대목에서는,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기로 한 노사간 합의는 무효라는 점을 확인했다. 근로기준법보다 낮은 임금이나 불리한 조건으로 계약하는 것은 무효라고 법이 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강 사무관은 “근로기준법은 당사자의 의사와 합의를 떠나서 강제로 적용되는 ‘강행규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는 노사간 합의가 모든 상황에서 무효는 아니라는 얘기가 동일한 판결문에서 나온다. “노사합의의 내용이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한다고 하여 그 노사합의의 무효 주장에 대하여 예외없이 신의칙의 적용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신의칙 적용 요건을 갖춘 예외적인 경우에는 “노사합의의 무효를 주장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신의칙은 ‘신의성실의 원칙’의 줄임말로, 민법 제2조에 규정된 민사계약의 대원칙이다. 형평에 어긋나거나 신뢰를 저버리는 방법으로 권리행사를 해서는 안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노사간의 약속이 있었다면 이를 지켜야 한다는 의미다.

전혀 상반된 주장으로 보이는 판결문이지만 강 사무관은 “신의칙 적용이 아무 때나 되는 것은 아니다”라며 판결문에 문제가 없다고 설명했다. 대법원이 정한 신의칙 적용 요건은 ▲합의 내용이 일정기간마다 지급되는 ‘정기상여금’일 것과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노사가 인식한 상태에서 합의를 하고, 이를 토대로 임금인상률 등 그 밖의 임금 조건을 정했을 것 두 가지다.

임금유형별 통상임금 여부

<자료=대법원/고용노동부>

강 사무관은 이에 대해 “정기상여금 이외 다른 수당의 경우 신의칙은 적용되지 않으며, 이를 통상임금에서 제외하자는 노사합의는 무효”라고 설명했다. 또 신의칙 적용 여부는 “다툼이 발생했을 때 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따라서 “정기상여금을 무조건 안 줘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설명에 대해 또 다른 참석자는 “결국 노사합의가 무효가 될지 여부를 모르니 소송을 해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차라리 무조건 줘야 한다고 했으면 반발이야 했겠지만 소송을 할 필요는 없어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법리상 문제도 소송의 불씨가 될 전망이다. 지난해 12월18일 대법원 판결문에는 대법관 3명의 반대의견이 실려 있다. 이들은 “근로기준법의 강행규정성을 인정하면서도 신의칙으로 그 강행규정성을 배척하는 다수의견의 논리는 너무 낯선 것이어서 당혹감마저 든다”며 “신의칙을 이용하여 강행규정을 위반한 법률행위의 효력을 유지하는 것은 전체 법질서 내에서 작동하여야 할 신의칙이 법질서에 역행하는 결과를 초래한다”고 비판했다.

강 사무관 역시 설명회 자리에서 “강행규정 위반에 대해 신의칙 적용은 불가하다는 비판은 정당하다”고 인정했다. 대법관 3명과 고용노동부가 법리적용의 허점을 인정한 셈이어서 향후 추가소송 시 계속해서 논란이 될 전망이다.

논란의 불씨는 명절수당으로 대표되는 ‘특정시점 재직시 지급되는 수당’에서도 나타난다. 명절귀향비나 휴가비 등은 일을 했는지와 무관하게 회사에 재직중이면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근로의 대가’가 아니어서 통상임금이 아니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존 수당의 지급조건을 재직자로 바꾸는 방식으로 통상임금 지급규모를 줄이는 것이 가능하다. 이에 대해 강 사무관은 “(기존의 수당에 대해) 재직자 조건을 넣는 것은 취업규칙의 불이익변경이기 때문에 동의절차를 명확히 밟아야 한다”고 말했다. 근로기준법은 취업규칙을 근로자에게 불리하게 변경할 때는 노동조합, 없을 경우에는 근로자 과반수의 동의를 넣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통상임금 노사지도 지침’에서 “사용자가 단지 통상임금을 줄이기 위해 노사협의 및 법적 절차를 준수하지 않고, 일방적으로 지급조건만 바꾸는 등 부당한 행위를 하지 않도록 엄정하게 지도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절차 이행 여부를 놓고 노사간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고용노동부는 책임을 피해갈 수 있는 얘기만 하는데, 분쟁이 생기면 결국 소송으로 해결하라는 것 아니냐”는 한 참석자의 볼멘소리는 노사지도지침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이어지는 소송전의 원인을 보여주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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