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이 비행기를 회항시킨 이른바 ‘땅콩리턴’ 사건이 방송·문화계에도 단골 소재로 활용되고 있다. 과도한 패러디 봇물에 피로감을 호소하거나 마케팅으로 활용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일각에서는 나오고 있다.

최근에 불거진 논란은 CJ E&M이 운영하는 케이블채널 엠넷의 음악드라마 ‘칠전팔기 구해라’다. 지난달 9일 이 드라마의 예고편에는 땅콩리턴 장면을 연상케 하는 여주인공의 ‘갑질’ 장면이 전파를 탔다.

극중 회사 대표의 딸로 등장하는 배우 서민지가 공항에서 대기 중인 차 뒷자리에 탄 뒤 운전기사에게 “퍼스트(비행기 내 일등석)는 땅콩도 그릇에 담아주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다.

지난 10일 본방송에서는 이 장면이 빠졌다. 운전기사가 대표의 딸에게 “긴 비행 힘드셨죠?”라고 묻자 “퍼스트라서 별로”, “아, 퍼스트 못 타보셨죠”라고 말하는 장면만 방영됐다. 일각에서는 예고편이 나간 뒤 대한항공 측에서 CJ E&M에 외압을 넣은 것이 아니냐는 목소리도 나왔다.

CJ E&M 측은 분량의 문제로 편집한 것일 뿐 외압은 없었다는 입장이다. CJ E&M는 10일 오전 “외압은 전혀 없었으며 여러 장면을 촬영했는데 그 중 일부를 예고편에 사용했다. 분량상의 문제로 드라마 전개에 큰 연관이 없는 장면을 편집했다”고 밝혔다.

실제로 대한항공이 이 장면을 두고 CJ E&M에 외압을 넣었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이미 수많은 프로그램에서 땅콩리턴 사건을 패러디했고, 훨씬 직접적인 비판을 한 프로그램들도 무리 없이 방영됐기 때문.

앞서 KBS 예능프로그램 ‘개그콘서트’에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의 검찰 출두 장면을 똑같이 재현해냈고, MBC 드라마넷의 드라마 ‘스웨덴 세탁소’에서는 운전기사가 땅콩을 봉지 째 건네자 여 주인공이 운전기사를 도로에 내 쫓는 장면 등이 방영됐다. 

KBS2 드라마 ‘힐러’, SBS 드라마 ‘펀치’, MBC ‘무한도전’ 등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리턴을 패러디한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있었다. 조현아 전 부사장을 직접적으로 겨냥한 것도 아닌 케이블 드라마 속 장면에 대한항공이 굳이 외압을 넣었을 것이라고 상상하기는 어려운 이유다.

오히려 최근에는 과도한 땅콩리턴 패러디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들이 늘어날 정도다. 처음에야 재벌의 갑질을 꼬집어 신선했지만 이제는 노이즈마케팅으로 활용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다. 실제로 한 공연제작사는 최근 성인 연극이 끝난 뒤에 땅콩 알몸 퍼포먼스를 벌이기도 했다. “퍼포먼스를 통해 우리사회의 갑질 횡포가 사라졌으면 한다”는 것이 이유였으나 크게 설득력을 얻기는 어려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