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이 김치찌개를 계기로 해서 도와주쇼” 이완구 국무총리 후보자가 지난달 말 네 명의 일간지 기자들과의 식사자리에서 이같이 말했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다. 언론에서 힘깨나 쓴다는 분들과 친하다는 이 후보자는 자신이 마음만 먹으면 언론사의 인사 개입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그러나 이날 이 후보자의 발언은 다음날 아침 신문에 보도되지 않았다. 이날 발언은 당시 대화를 녹음한  기자가 야당 의원에게 녹취록을 넘기면서 다른 언론에 의해 보도됐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와 기자들간의 ‘김치찌개 회동’은 여러모로 곱씹어 볼 구석이 많은 사건이다. 첫째는 기자와 취재원의 관계다. 기자와 취재원은 엄연히 공적인 관계로 식사 자리라 해도 마찬가지다. 기자를 대하는 홍보팀 등의 취재원은 대개 식사를 대접하는데, 이게 참 난감한 자리다. 친하지 않은 사이에 데면데면하게 이야기를 나누는 것보단 식사시간을 이용해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게 서로 수월한 건 사실이다. 기자 입장에서도 업계 동향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도 있다.

취재원은 식사를 대접하며 홍보 및 협조를 부탁한다. 그 다음엔 기자에게 암묵적인 발언권이 주어진다. 홍보팀 직원은 넌지시 경쟁사나 업계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이제 밥을 얻어먹었으니 “정보를 내놓으라”는 암묵적인 지시다. 기자 생활 초반에는 이같은 분위기가 너무 당혹스러웠다. 신입이라 아는 게 별로 없는데 자꾸 이것 저것 물어오니 대강 아는 척 둘러댔었다. 당시에는 적당히 잘 넘겼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상대방은 알았을 것이다. ‘이 기자에겐 건질 것이 별로 없겠구나’라는 사실을. 그로부터 몇 년이 흘렀지만 지금도 여전히 취재원과의 식사는 불편하다. 함께 밥이라도 한 끼 먹고 나면 기자의 펜 끝이 조금이나마 무뎌지는 게 사실이다. 그걸 알기에 애초에 식사 자리를 피하는 측면도 있다.

‘이완구 김치찌개’ 사건에서 취재원과의 관계보다 중요한 문제는 언론 카르텔이다. 네 명의 기자들은 이 후보자의 험악한 말을 듣고도 아무도 기사를 쓰지 않았다. 언론 보도 내용을 종합해 보면 해당 기자들은 식사를 마치고 해당 발언을 보도할 것인지를 두고 상의를 했고, 취재의 연장선이었기에 일부 기자들은 녹음도 했으며, 회사에도 보고를 했다. 그럼에도 김치찌개 식사 자리에서의 발언들은 기사화 되지 않았다. 여기서 나온 폭탄발언들은 야당의원을 거쳐 KBS를 통해 보도됐다. 애초에 취재현장에 있었던 일간지에서도 뒤늦게 이완구 총리후보의 언론관을 ‘준엄하게’ 꾸짖었다. 

일각에서는 해당 발언을 듣고도 보도하지 않은 언론들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은 아니나 여러 정황들을 맞춰보면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만약 네 명 중 연차가 적은 기자가 정의감에 불타 보도하고 싶었더라도 다른 회사의 선배 기자들이 보도하지 않기로 합의하면 따라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만약 약속을 깨면 기자단의 눈총을 받는 것은 물론, 내부에서 징계까지 받을 수 있다. 기자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카르텔이다. 

기업이 담합을 하면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에게 전가된다. 언론도 마찬가지다. 담합에 의해 조율된 보도로 인한 피해자는 독자이며, 우리 국민이다. 언론의 본령은 독립성이요, 주체성이다. 기자단 문화가 언론 독립성에 걸림돌이 되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완구 총리 후보자의 김치찌개 사건이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건 이같은 이유에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