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유럽 여행을 준비하며 나를 들뜨게 만든 사진 한 장이 있었다. 폭설이 내리는 덴마크에서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자전거로 출근을 하는, 이른바 ‘자출족’이 드문 한국인이 보기에는 신기한 일이다. 저렇게 눈이 오는데 왜 굳이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할까라는 의문이 드는 거다. 그 사진을 올린 사람에 따르면 자전거 이용이 활성화돼 있는 덴마크에서는 일상적인 일이란다. 자전거 애호가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다. 나도 덴마크에 가서 자전거를 타겠노라 다짐했다.

내가 찾은 곳은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이었다. 코펜하겐은 스웨덴의 남부도시 말뫼에서 기차로 40분이면 갈 수 있다. 스웨덴 말뫼와 덴마크 코펜하겐 사이에는 외레순해협이라는 곳이 있는데, 이 해협을 잇는 다리를 건너면 곧장 코펜하겐이다. 거리가 가까워 말뫼에서 코펜하겐으로 출퇴근을 하는 사람도 많다고 한다. 매일 국경을 넘어 출퇴근을 한다는 건 한국의 상황에 비춰보면 흥미롭게 느껴지는 일이다. 내게는 국경을 ‘넘는다’는 것이 상당히 큰 일로 다가오는 터다. 말뫼에서 코펜하겐으로 가는 기차를 타기 전에도 혹시 몰라 여권을 챙겼지만 역시나 검사하는 사람은 없었다.

코펜하겐 기차역을 빠져나오자 역 앞에는 수백 대의 자전거가 주차돼 있었다. 여기가 바로 자전거 천국, 덴마크였다. 주덴마크대사관이 발표한 코펜하겐의 자전거 정책 자료에 따르면 2010년 기준 코펜하겐의 자전거 수는 약 56만대로 코펜하겐시 인구(55만명)보다 많다. 코펜하겐의 자전거 수송분담률, 즉 자전거를 이용한 출퇴근과 통학비율은 50%에 달한다. 자동차(32%)나 대중교통(26%) 보다 자전거를 통한 출퇴근이 일상화돼 있다는 얘기다. 참고로 한국의 자전거 수송분담률은 2012년 기준 2.2%다.

코펜하겐에 가 보니 정말 사람들은 일상적으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자전거 동호회 회원들이 여가생활로 자전거를 타는 것이 아니라 이동수단으로 자전거를 이용하고 있었다는 의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코펜하겐에는 자전거를 타기 위한 모든 조건들이 갖춰져 있었다. 첫째는 자전거 전용도로. 코펜하겐의 면적은 88㎢인데 자전거도로의 길이가 411㎞다. 모든 길에 자전거도로가 있다고 보면 된다. 코펜하겐의 자전거도로는 ‘자전거를 타도 되는 곳’이 아니라 ‘자전거만 이용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같은 체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전거를 타고 있던 중 다른 자전거 운전자로부터 날선 지적이 날아왔다. “이봐! 당신 지금 역주행하고 있잖아!”라는 것. 자전거도로에 진행방향이 있다는 것을 몰랐던 나는 황급히 자전거를 끌고 인도로 빠져나와야했다.

코펜하겐에는 자전거를 위한 신호등도 따로 있다. 자동차, 보행자와 함께 자전거도 교통의 주체 중 하나로 인정 받고 있는 것이다. 코펜하겐시에 따르면 자전거는 코펜하겐 사람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부분이다. 출퇴근, 외출, 장비 운반, 여가생활 등 다양한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또 자전거로 이동하는 것은 도시를 이동하는 가장 빠른 방법인 동시에 환경에도 친화적이라는 것이 코펜하겐시의 설명이다.

모든 권리에는 의무가 따르는 법. 코펜하겐에는 자전거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는 만큼 지켜야 할 것도 많다. 자전거 신호를 지켜야 하는 것은 물론, 자전거에 라이트 장착도 의무화돼 있다. 자전거를 멈추거나 방향을 바꿀 때는 수신호를 통해 의사를 표시해야 한다. 어린이 전용 시트가 장착된 경우를 제외하면 한 자전거에는 한 사람만 탑승할 수 있다. 자전거를 탄 채 보행자도로를 이용하는 것도 금지돼 있다. 시에서 정한 자전거 법규를 어길 시에는 700~1000크로네(약 10만1000원~14만4000원)의 벌금이 부과된다.

코펜하겐시는 자전거 운전자들에게 안전모 착용을 권장하고 있지만 의무사항은 아니다. 코펜하겐에서 안전모를 쓴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다. 현지인에게 왜 쓰지 않느냐고 묻자 그리 위험하다고 생각하지 않아서란다. 실제로 코펜하겐의 연간 자전거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2010년 기준 92명(사망자 3명)으로, 시 차원에서 적극적인 자전거 정책을 펴기 시작한 이래 꾸준히 감소하고 있다. 반면 같은 기간 서울의 자전거 교통사고 사상자 수는 3075명(사망자 34명)이다. 2007년 1951명(사망자 25명)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대폭 증가한 수치다.

덴마크에서 자전거는 등록제다. 자전거를 사면 경찰서에 가서 등록을 하고 타야 향후 분실했을 때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자전거가 없는 사람은 빌려서 탈 수 있다. 여행자는 물론 현지인들도 이용하는 자전거 대여 시스템이다. 내가 자전거를 대여한 곳은 고바이크(byogpendlercyklen.dk)라는 곳이다. 스마트폰으로 홈페이지에 접속해 회원가입을 해도 되고, 자전거에 달려있는 네비게이션으로 해도 된다. 이용요금은 한 시간에 3000원 정도. 덴마크의 무시무시한 물가 수준을 고려하면 저렴한 요금이다. 

무엇보다 이 자전거의 좋은 점은 전기자전거라는 것. 전기자전거란 평지에서는 일반자전거와 똑같이 달리다가 오르막길에서는 전기모터가 작동해 편안하게 오를 수 있는 자전거다. 한국에서도 타보고 싶었지만 비싼 가격 탓에 군침만 흘리고 있었는데 덴마크에 와서 운 좋게 타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게다가 이 자전거에는 네비게이션도 장착돼 있었다. 자동차 네비게이션과 마찬가지로 GPS를 통한 현재 위치 표시와 길 찾기, 주변검색 등이 가능했다. 

모든 것이 준비됐다. 그런데 막상 타려고 보니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대여 자전거는 장신(長身)의 북유럽인들에게 맞춰져 있는지 안장이 너무 높았다. 다리를 쭉 뻗으면 발이 페달에 닿을 듯 말듯했다. 안장 높이를 조절해 보려했지만 힘이 부족해서인지, 요령이 없어서인지 좀처럼 잘 되지 않았다. 결국 주변사람에게 도움을 요청하기로 마음을 먹었다. 

멀리서 연인인 듯 보이는 남녀 한 쌍이 걸어오기에 도움을 청했다. 여기서 자전거를 처음 타봐서 그런데 안장 낮추는 것을 좀 도와줄 수 있겠느냐고. 남자 쪽이 자신만만한 태도로 팔을 걷고 나섰다. 그런데 이걸 어쩌나, 생각만큼 안장 조절은 잘 안 됐다. 여자는 “너 근육 좀 키워야 되는 거 아니야?”라며 비웃었고 남자는 “시끄러워(Shut up)”라며 민망해했다. 나도 웃음이 났지만 도움을 청하는 입장인지라 짐짓 못들은 척 딴청을 피웠다. 약간의 어려움은 있었지만 결국 근육이 부족한(?) 남자의 도움으로 덴마크에서 라이딩을 즐길 수 있었다는 해피엔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