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무법인 민후 김경환 대표변호사는 3일 국회에서 열린 전자금융거래법 개정안 세미나에서 “전자금융거래법 9조가 제대로 작동했다면 금융소비자들이 보호를 받을 수 있었겠으나 현재까지 판례를 보자면 전패다. 법의 취지는 보호인데 현실은 다르게 흘러가고 있다”고 말했다.

전자금융거래법 9조(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의 책임) 1항에 따르면 ▲접근매체의 위조나 변조로 발생한 사고 ▲계약체결 또는 거래지시의 전자적 전송이나 처리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 ▲거짓이나 부정하게 정보통신망에 침입해 금융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금융회사 또는 전자금융업자가 손해배상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반대다. 보이스피싱 등 전자금융사기 피해자가 금융사를 대상으로 소송을 제기해 승소한 사례는 전무한 실정이다. 

금융감독원 소비자보호처에 따르면 지난 2012년 1월부터 2013년 7월까지 전자금융사기 피해자가 은행 및 카드사를 상대로 제기한 소송 중 승소한 사례는 한 건도 없었다. 확정판결이 나온 51건 중 49건에서 금융소비자 패소 판결이 나왔다. 나머지 2건 역시 화해권고를 통해 금융회사가 손해액의 40%를 배상한 경우였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사단법인 오픈넷 박지환 변호사는 이처럼 금융소비자들이 재판에서 패소하는 이유가 “전자금융거래법의 금융회사 면책요건이 이용자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해석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전자금융거래법 9조2항의 금융회사 면책조항에 따르면 금융사고가 발생, 이용자의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우 이용자에게 책임을 물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때문에 금융사들은 소비자들의 부주의로 계좌 비밀번호나 보안카드번호 등이 누출됐다며 책임을 피해가고 있다.

가짜 인터넷뱅킹 사이트를 활용한 ‘파밍’ 등 금융사기 수법이 날로 다양해지자 현행 전자금융거래법에도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사진=각 은행 홈페이지 소비자 피해예방 알림창>

박 변호사는 “금융회사의 면책사유인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 조항의 해석이 모호하고 재판과정에서도 국내 금융보안 현실이 제대로 반영되지 못해 면책요건이 이용자에게 상당히 불리하게 해석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함께 전자금융 활성화로 현행법에는 포함되지 않는 신종 범죄도 문제다. 지난해 한 농협 이용자는 원인을 알 수 없는 금융 범죄로 1억2000만원을 인출당하는 피해를 입었다. 피해자가 보상을 받기 위해서는 범죄자들이 접근매체의 위조나 변조 등을 이용했다는 사실을 증명해야 한다. 농협을 비롯해 우리은행, SC은행에서도 이 같은 금융사고가 발생했으나 은행들은 금융사고의 기술적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다는 이유로 손해배상 책임을 미루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이종걸 의원은 금융소비자의 권익을 강화하는 내용이 담긴 전자금융거래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지난달 24일 발의했다. 

개정안에는 금융소비자가 금융사고의 기술적 유형을 입증해야하는 조항을 폐기하고 금융회사가 책임을 입증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겼다. 금융사고 유형이 접근매체의 위조에 의한 것인지, 정보통신망 침입에 의한 것인지를 소비자가 밝힐 필요가 없어졌다는 의미다.

개정안에 대해 한국소비자원 윤민섭 선임연구원은 “금융사고 입증 책임을 금융기관으로 했다는 점에서 고무적”이라면서 “전기통신금융사기 피해 방지 및 피해금 환급에 관한 특별법에 의해 금융소비자들의 피해가 일정부분 보완되고는 있지만 피해 범위를 축소시킬 뿐 완전하게 해결하지는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금융위원회 김동환 전자금융과장은 “개정에 담긴 금융소비자 보호라는 기본적인 방향은 정부 입장에서도 긍정적으로 본다”면서도 “금융사고에 대한 금융사의 책임이 높아지면 그 비용 부담이 소비자에게 수수료의 형태로 전가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김 과장은 “개정안이 시행된다면 금융사들이 사고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 소비자들을 더욱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해외에서는 소비자 편의를 강조해 금융의 경쟁력을 갖춰가고 있는데 (우리는) 이를 외면하고 사고만 줄이겠다며 역으로 가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