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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장품 개발시 생물자원 원산지와 이익 공유 바이오 해적질 막는 나고야 의정서…올해 국회 통과 예상

기사입력2015-03-13 00:00

이창호 기자 (xg139@junggi.co.kr) ㅣ다른기사보기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로 널리 이용되는 나무는 한국이 원산지인 구상나무의 계량종이다. 이처럼 생물자원을 이용할 경우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나고야의정서가 지난해 발효되면서 바이오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사진=환경부>

크리스마스 트리로 가장 많이 쓰이는 나무는 본래 한라산이나 지리산 등지에서 서식하는 한국의 고유종이었다. 그러나 한국은 이 크리스마스 트리 이용에 대한 로열티를 전혀 받지 못하고 있다. 1900년대초 유럽으로 유출된 뒤 크리스마스 트리로 계량된 것인데, 원산지인 한국이 생물자원을 관리하지 못한 통에 발생한 일이다.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정원수 중 하나인 미스킴라일락 역시 원산지가 한국이다. 1947년 북한산에서 채집된 정향나무 종자는 미국으로 건너가 계량을 거쳐 정원수로 이용되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한국은 이로 인해 어떠한 이익도 얻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생물자원이 유출되고 계량을 거치는 과정에서 지적재산권이 해외로 넘어가 버리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지만, 원산지 입장에선 억울한 일이다. 앞으로는 국가가 생물자원을 등록·관리해 이같은 생물자원의 유출을 방지하고, 이용 시에는 이익을 공유해야 하는 시대가 열린다. 바로 나고야의정서가 발효됐기 때문이다.

1993년 194개국이 당사국인 생물다양성협약(CBD)이 발효됐고, 부속 의정서인 나고야 의정서는 2010년 일본 나고야에서 채택돼 지난해 10월 한국 평창에서 발효됐다. 생물다양성협약의 세 가지 목표는 생물다양성 보전, 구성요소의 지속가능한 이용, 이용으로부터 발생한 이익의 공정하고 공평한 공유다. 이 중 세 번째 목표를 실현하기 위해 채택된 것이 나고야의정서다.

나고야의정서의 적용대상은 유전자원 또는 유전자원과 관련한 전통지식이다. 유전자원은 동물과 식물 등 생물자원 일체를 말하며, 관련 전통지식이란 해당 생물에 어떤 효험이 있다는 전통적인 지식을 의미한다.

대한화장품협회가 12일 개최한 ‘나고야의정서 업계 인식제고를 위한 설명회’에서 환경부 생물다양성과 윤은정 사무관은 “화장품을 직접 제조하거나 원료를 들여와 국내에 가공한 뒤 판매하는 것은 모두 나고야의정서의 영향을 받는다”고 말했다. 화장품뿐만 아니라 의약품을 비롯해 생물자원을 이용하는 업종이라면 대부분 영향을 받게 된다.

윤 사무관은 “배추를 수입해 와 김치로 제조해 판매하는 것”은 의정서 적용대상이 아니지만, “생명공학기술의 적용을 포함한 유전자원의 유전적, 생물학적 조성에 관한 연구개발”과 같은 유전자원의 이용 시에는 나고야의정서를 준수해야 한다고 말했다.

의정서에 따르면, 자원제공국은 자원에 대한 접근과 이익공유 절차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야 한다. 이용자 측은 제공국의 책임기관 승인을 얻은 뒤, 자원제공국의 토착 공동체나 개별제공자와 상호합의에 따른 이익공유 협약을 체결한 뒤 생물자원을 이용할 수 있다. 구체적인 승인절차는 국가마다 다르며, 이익공유 협약 또한 국가별로 가이드라인이 다르다. 의정서는 자원제공국에게 “법적 확실성, 명확성, 투명성을 확보할 것”이라는 의무를 지우고 있다.

<자료=ABS정보서비스센터>

영국의 피토팜 사는 2013년 남아프리카 전통식물인 후디아를 이용한 식욕억제제로 얻는 로열티와 이익 일부를 남아공 San 부족과 공유하기로 했다. 이 약은 남아공 과학산업연구부가 1995년 개발한 기술을 이전받아 피토팜 사가 개발했는데, 과거 San 부족이 장시간 사냥을 나갈 때 배고픔을 견디기 위해 후디아를 이용했다는 전통지식이 이용된 것이 이익공유의 이유였다.

과거와 달리 생물자원 이용시 이익을 공유하게 되면 이용자 입장에서는 손해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중국의 팔각회향이라는 향신료에서 추출한 물질로 만든 신종플루 치료제 ‘타미플루’의 연간 매출액은 9000억원에 달한다. 이용자 측이 독식하던 이익을 자원보유국에 제공하게 되면 과거에 비해 손해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나고야의정서 체결 이전에 이미 이런 생물자원 이용에 대해 ‘바이오 해적질’(Biopiracy)이라고 비판하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시작됐다. 일본의 화장품 제조업체 시세이도 사는 1990년대 후반 인도네시아의 전통약용식물인 ‘자무’를 이용한 화장품 원료를 만들고, 이에 대한 특허를 출원한 바 있다. 그러나 2000년대초 인도네시아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시세이도의 바이오 해적질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자, 회사 이미지 손상을 이유로 2002년 특허출원을 철회하기에 이른다. 윤 사무관은 이에 대해 “시세이도는 특허출원 과정에서 많은 인력과 예산을 투입했지만, 끝내 출원을 철회해 손해를 입었다. 만약 바이오 해적질을 막을 수 있는 절차와 과정이 있었다면, 오히려 손해가 없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나고야의정서 발효가 준비되는 과정인 2000년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태국과 인도, 페루 등은 자국의 특정 식물에 대한 해외수출과 반출을 금지하고 생물자원 이용시 이익을 공유해야 한다는 자국법을 만들기도 했다. 의정서가 발효되면서 오히려 이같은 개별법률이 의정서 정신에 따라 투명하게 접근하기 쉽도록 바뀔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제공국들이 생물자원을 발굴 및 관리하는데 좀 더 힘을 쏟으면서 정보제공도 투명해지고, 이용절차도 명확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글로벌 제약사 노보 노디스크 등 대형 바이오기업들이 위치해 자원제공국이 아니라 자원이용국 입장인 덴마크가 지난해 5월 의정서를 승인하고 관련법률을 빠르게 입법하는 것도 눈여겨볼 만한 움직임이다. 윤 사무관은 이에 대해 “이익공유를 잘하고 제공국이 원하는 절차를 잘 준수하는지 모범적으로 확인하는 것이 유전자원 확보에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경우 자국 특허법에 생물자원을 이용한 경우 직접 출처와 원시 출처를 공개하도록 의무화했다. 불법으로 취득한 생물자원을 이용한 경우에는 특허권을 주지 않는 방안도 이미 입법화됐다.

한국은 나고야의정서 관련 내용을 반영한 ‘유전자원의 접근 및 이익 공유에 관한 법률’을 지난해 10월 국회에 제출했고, 올해 안으로 국회 통과와 공포를 완료할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법이 통과되면 국내 유전자원이나 이와 관련된 전통지식에 접근하려는 외국인은 책임기관에 신고해야 하며, 미신고 시 과태료가 부과된다. 해외 유전자원 이용자는 제공국의 절차를 준수해야 하며, 절차 준수 여부를 증명하기 위해 점검기관에 신고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