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은 여러 가지 권리의 다발이라고 표현됩니다. 저작권이 보장하는 작가의 권리는 여러 종류가 있기 때문이죠. 크게는 재산권적 요소인 저작재산권, 저작자의 인격과 관련된 저작인격권이 있습니다. 저작인격권은 자신의 저작물에 대해 정신적, 인격적 이익을 추구할 수 있는 권리입니다. 저작자의 일신에 전속돼 다른 사람에게 양도하거나 상속할 수 없고 그가 사망하면 사라지는 권리입니다. 저작재산권은 그렇지 않고 다른 사람에게 팔 수 있지요.

미국은 연방 시각예술가권리법

저작인격권은 나라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국 저작권에 따르면 공표권, 성명표시권, 동일성유지권이 있습니다.

공표권은 저작물을 공표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하고, 성명표시권은 저작자가 저작물의 원작품이나 복제품 등에 그의 실명 또는 이명(작가의 필명 등)을 표시할 권리입니다. 동일성 유지권은 저작물의 내용, 형식, 제호를 유지할 권리로 작가가 아닌 다른 이가 저작물의 재산적 주인이라 할지라도 저작자의 사상과 감정을 완전히 보호하기 위해 작품의 이름이나 내용을 변경하는 등 혼란과 훼손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권리입니다. 예술작품은 예술가의 인격의 연장이자 내면의 표현이기 때문에 작품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예술가의 인격을 침해하고 모독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입니다.

미국에는 이와 관련한 특별법이 있는데 연방 시각예술가권리법이라고 합니다. Visual Artists

Rights Act 줄여서 VARA라고 합니다. 이 법에 따르면 작가의 의도를 정확히 반영하지 않는 작품에 대해 작가의 이름을 사용하지 못하며 따라서 작품을 변경하거나 변형시켜 전시하거나 다시 제작하는 경우 예술가는 자신의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하거나, 반대로 자신의 이름을 빼고 재제작하는 경우 이름을 넣어달라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이 법리에는 반대하는 입장도 있습니다. 주로 재산권과의 충돌을 문제 삼습니다. 물건을 사면 그 물건은 나의 소유인데, 만일 내가 돈을 주고 산 작품을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다면 과연 그것은 내가 물건을 소유한 것이냐는 것입니다. 재산권이 구매한 사람으로 완전히 이전되지 않는다면 소유자는 단순히 물리적 관리인에 불과한 것 아니냐는 것이죠.

저작인격권 논란 사례

미국 메사추세츠 현대미술관에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렸던 <무담 룩셈부르크 콜렉션>전으로 잘 알려진 크리스토프 뷔헬의 거대 설치예술 전시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크리스토프 뷔헬이 현대미술관을 상대로 전시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것입니다. 사실 이 프로젝트는 엄청난 인력과 돈이 들었습니다. 폭탄, 비행기동체, 컨테이너, 1천대의 컴퓨터 자전거 등으로 이루어진 거대 설치 프로젝트였죠. 2006년 미술관과 뷔헬은 이 작품을 만들기 위해 여러 미술관 직원들과 함께 돈을 들여 설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뷔헬은 보잉737 비행기의 동체까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미술관은 예산 때문에 그것은 어렵다고 했죠. 그 해 겨울 뷔헬은 전시를 포기하고 프로젝트를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술관은 이 설치를 일방적으로 끝내고 2007년 봄에 전시를 개최했습니다.

그러자 뷔헬은 미국시각미술가법(VARA)에 따라 예술가의 권리가 침해됐다며 전시금지를 요구한 것이죠. 아직 전시준비는 끝나지 않았고, 이 작품은 나의 작품이 아닌데 이 상태로 전시를 여는 것은 작가 뷔헬의 명성에 먹칠하는 것이라는 것이죠. 작품이 끝났는지 아닌지는 저작인격권으로서 작가가 결정할 수 있는 오로지 독점적인 권리이기 때문이라고요.

한편 미술관은 이에 대해 작품이 정말 안 끝났기 때문에 오히려 VARA법의 적용을 받을 수 없다고 항변했습니다. 미국시각미술가법은 ‘완성된 작품’에만 적용되기 때문에 작품이 아직 아니라는 것입니다.

법원은 VARA가 완성된 작품에 적용되는 것은 맞으나 미술관 직원들이 공동으로 작업했기 때문에 전시 자체를 막을 수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 직원들도 일종의 공동 저작자이니까요. 다만, 이 전시에 뷔헬의 이름을 완전히 달 수는 없고, 아직 뷔헬의 작품은 미완성이라는 사

실을 관람객에게 명시하라고 했습니다. 이 결정 후 미술관은 작품을 철거해 버렸다고 합니다.

또 다른 사례로는 프랑스 야수파 작가인 샤를 카무앵의 사례입니다. 1914년 카무앵은 작품 중에서 맘에 안드는 것이 있자 이를 망가트린 후 버렸습니다. 그런데 지나가던 사람이 이를 주워서 고쳐 골동품점에 팔았습니다. 10년 후 프랑시스 카르코라는 사람이 이를 경매를 통

해 팔았습니다. 이를 안 카무앵이 버린 것을 고친 것은 자신의 작품을 위조한 것이라며 경매회사측에 작품을 없애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에 법원은 작가는 작가가 버린 작품이므로 이를 주운 사람이 법적으로 분명한 재산적 권리자임은 인정하지만 저작인격권 상 작품의 복구를 반대하고 폐기를 주장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실 저작인격권은 상당히 어렵고 논란이 많은 권리입니다. 위에서 본 것처럼, 재산적 권리를 아주 많이 제한합니다. 그래서 저작인격권도 아무렇게나 쓸 수는 없습니다. 미술관에서 전시도록을 만드는데 카메라의 성능과 인쇄의 한계 때문에 원래 색이 똑같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지요.

우리 법도 작품의 “본질적 변경”이 아닌 한, “부득이하고 인정되는 범위 안에서의 변경”은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국립현대미술관에 있는 백남준의 <다다익선>의 TV가 고장나서 그 안의 브라운관 속의 부품을 교체해서 수리한다면 “작품의 본질적 변경이 아닌 한도내의” “부득이한 변경”이라서 저작인격권의 침해가 아니게 됩니다.[글=LG전자 스마트비즈니스센터 김별다비 변호사, curatorstudy@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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