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일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에 ‘레진코믹스’가 올랐다. 인기블로그에서 시작해 웹툰전문 사이트로 발전한 레진코믹스는 만화 애독자들 사이에선 상당히 널리 알려진 곳이다. 그러나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1위라는 순위가 언뜻 이해갈 정도는 아니다. 개별 웹툰 제목이야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오른 사례를 찾기 어려운 것이 아니지만, 웹툰을 볼 수 있는 사이트에 대한 관심이 단기간에 크게 오를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했다.
아니나 다를까, 좋지 않은 소식이 있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심위)가 레진코믹스를 차단조치했다는 것이다. 레진코믹스에서 볼 수 있는 웹툰 중에 성인물도 있는데, 이것을 이유로 방심위에 민원이 들어와 임시 차단조치했다는 것이다. 단통법으로 유명한 ‘방통통신위원회’와 이름이 비슷한 이 기관은 방송이나 통신 상에서 ‘심의’역할을 맡고 있다. 레진코믹스 주소를 입력하면 성인물 동영상 등을 애용하는 이들에게 익숙한 warning.or.kr의 불법 유해사이트 차단 조치 화면으로 자동 이동됐다.
복수의 매체에서 보도된 바를 종합하면, 24일 방심위는 통신심의소위원회를 개최했고, 레진코믹스의 서버가 해외에 있는 점 등을 고려해 우선적으로 접속차단 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방심위는 이 과정에서 “청소년 접근 제한조처가 없었다”는 점을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레진코믹스는 법이 정한 성인인증 절차를 준수해왔고, 따라서 지금까지 한번도 방심위의 제재조치를 받은 적 없다고 밝혔다. 레진코믹스를 이용해본 복수의 사용자들 역시 성인물에 접근하려면 아이핀 등 성인인증을 거쳐야 했다는 사실을 증언했다.
결국 불과 3시간 만에 차단조치가 중단됐다. 이후 26일 방심위는 통신소위를 개최하고 스스로 시정요구 조치를 철회하기로 했다. 레진코믹스가 성인물에 대한 성인인증을 정상적으로 진행했으니, 차단조치가 정당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심위가 스스로 인정한 셈이다.
인터넷 자유를 위해 설립된 사단법인 ‘오픈넷’은 27일 성명서를 내고 “정보 주체에 대한 사전, 사후 통지와 의견진술 기회 부여 등의 절차를 위반한 방통심의위의 차단 결정은 위법”이라고 지적했다. 또 방심위가 “과잉 제재의 우려 때문에 전체 게시물을 조사해서 불법정보가 70% 이상인 경우에만 사이트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하는 내부기준을 수립”해 운영 중이지만, 이를 준수하지 않아 레진코믹스의 성인물이 아닌 모든 웹툰이 차단된 것은 졸속심의, 과잉제재라고 비판했다. 실제로 레진코믹스 초창기 킬러콘텐츠인 마사토끼 작가의 ‘삼국지 가후전’은 음란물과 전혀 거리가 멀다.
경실련 소비자정의센터 역시 성명서를 통해 “방심위의 인터넷심의에 대하여 반대하며, 명확한 사실 확인 및 법률에 정한 의견청취 절차를 생략한 채 공공기관이 게시글 삭제 또는 사이트의 일방적인 차단 조치를 한 것은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검열행위와 같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표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레진코믹스는 사이트 전체의 접속이 차단돼 일시적으로나마 영업이 마비된 상황에 대한 비분강개를 털어놓지 않았다. 그저 ‘레진코믹스 워닝기념 이벤트’라며 임시차단 조치 시 나오는 ‘워닝’ 화면을 패러디한 페이지를 만들어 할인행사를 할 뿐이다. 국방부가 장하준 교수 등의 도서를 군대반입 금지도서로 선정했을 때 다수의 서점과 출판사들이 ‘국방부 금지도서 특선’ 행사를 진행한 사건이 떠오른다. 자의적이고 불법적인 검열행위가 발생하는 나라에서 콘텐츠 비즈니스를 할 때는 대범하고 유쾌한 비즈니스 감각이 필요하다는 점을 보여주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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