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을 계속 찍다 보니 일순간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기록 사진은 단련된 기술 같다는 생각이요. 그래서 사진을 ‘만든다’는 생각으로 다시 시작해 봤습니다”

구성수는 사진을 만드는 작가다. 그의 야생화 작품은 사진인데도 올록볼록한 양감이 느껴진다. 이 양감은 컴퓨터 모니터나 화집이 아닌 실제로 봐야만 온전히 전달된다. 이같은 느낌을 연출하기 위해서는 꽤 번거로운 과정이 수반된다. 구성수 작가는 한 점의 작품을 완성하기 위해 회화, 조각, 사진이라는 세 개의 과정을 거친다.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길에서 수집한 야생화를 찰흙 위에 놓고 꾹 눌러준다. 형태가 새겨진 찰흙 위에 석고시멘트를 부어 굳히면 편편한 야생화 조각 하나가 만들어진다. 여기에 작가는 수채화 물감으로 채색을 하고, 이를 사진으로 촬영한다. 사진이면서 그림이기도 한, ‘포토제닉 드로잉’ 시리즈다.

야생화를 사진기로 찍으면 될 것을 왜 굳이 이렇게 복잡한 일을 하느냐는 사람도 있다. 사진기가 아무리 좋다 한들 피사체 전체에 초점을 맞추기는 어렵고, 작가가 원하는 그림을 정확하게 얻어내기는 어렵다는 것이 그의 말이다. 실제로 보니 무슨 말인지 수긍이 갔다. 수채물감의 색이 은은하게 배어난데다 입체감까지 느껴지는 그의 야생화는 사진의 그것과는 많이 달랐다.

“그동안 기록사진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을 인내해 왔다면 포토제닉 드로잉 시리즈는 보다 적극적인 태도로 예술에 접근해보고자 한 것입니다. 새로운 매체와 작업에 도전하는 것이 사진의 가능성을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예전에는 사실적인 기록사진을 주로 찍었다. 한국 소비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내용이 주를 이뤘다. 한국의 모텔 건물 위에 서 있는 자유의 여신상 작품은 해외에서 좋은 반응을 얻었다. 해장국집 벽면에 그려진 흔해빠진 동양화도 그의 사진기를 거치니 근사한 작품이 됐다. ‘해장국집(Korean Restaurant)’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작품은 신세계 명품관 벽에 걸려있다. 해장국집과 명품관은 억겁의 거리감이 느껴지는 공간이다. 그는 “예술이기에 이 둘이 공존하는 일이 가능하다”고 했다.

기록사진과 회화적인 야생화 시리즈 사이의 관계를 묻는 이들도 많단다. 한 작가의 작품이라고 생각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적으로는 달라진 까닭이다. 구성수 작가는 이같은 주변의 물음이 오히려 이상하다고 했다. “예술가라면 늘 새로운 것에 도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년에는 인물사진 시리즈인 ‘영웅’을 발표한다. 고등학교 3학년 학생 100명의 모습을 각각 사진기에 담은 작품으로 2012년에 이미 모든 촬영을 마쳤다. 구 작가는 100명의 학생들과 앞으로 무엇이 되고 싶은지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그 내용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사진과 기록물은 책과 전시로 만들어진다. 사진이 발표될 2016년에는 학생들도 23살의 성인이 돼있을 터다.

“영웅은 고등학생이 미래의 꿈을 다짐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사진기 앞에서 자신의 미래를 다짐해보는 과정을 거치는 겁니다. 사람은 사진기 앞에 서면 긴장하기 마련입니다. 그 긴장감을 통해 자신의 미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죠. 내년 출판기념회 겸 전시 때는 100명의 학생들을 모두 초대해 볼 참입니다. 어떤 모습이 돼있을지 무척 궁금합니다”

구성수 작가는 1992년부터 13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한국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리움미술관, 미국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휴스턴 현대미술관, 폴게티 미술관 등이 그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대표작인 ‘포토제닉 드로잉’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갤러리에 전시된다. 전시는 오는 4월1일부터 19일까지며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