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9일 엄수된 싱가포르 리콴유 전 총리의 장례식에 우리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하고 돌아왔다. 김종필 전 총리 부인 박영옥 여사가 별세했을 때 직접 조문을 가 보여준 것과 같은 ‘인간적’ 면모를 다시 보여줬다는 평도 있고, 1979년 리 전 총리의 방한 때 “영애가 영어를 잘한다”는 칭찬으로 시작된 인연을 끝까지 존중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물론 선친인 박정희 전 대통령이 고인을 존경해 마지않았다는 데서 원인을 찾는 사람도 있고, 격세유전하듯 대를 이은 국가지도자 가문이라는 이심전심의 행보였다는 ‘오버’ 섞인 관전평도 있다. 어쨌든 박 대통령은 그냥 ‘참석’한 정도가 아니라 새벽 1시 도착, 낮 1시 장례행사 참석, 저녁 6시 이륙이라는 강행군을 마다않으며 고인의 마지막길을 배웅했다.
물론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조문외교’ 논리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례식에 함께 참석한 이들의 ‘격’을 따지는 것은 너무 ‘격 떨어지는’ 처사여서 언급하지 않기로 한다. 세계인의 존경과 사랑을 받았던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추모식에는 다른 이를 사절로 보냈던 전례와 비교하는 것도 정 없는 처사가 될 수도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인 거리의 문제도 있어 삼가기로 한다. 그런데 그렇게 ‘인간적’인 면모를 보이는 박 대통령이 지난 3일 제주에서 열린 4.3 국가추념식조차 불참한 것은 이해되지 않는 대목이다.
제주 4.3 ‘사건’은 신고된 희생자만 1만4000천명이 넘는 우리 역사의 아픈 생채기다. 정부에서조차 ‘국가권력에 의한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사과’한 역사적인 사건이다. 이 상처를 어루만지고 치유하는 것은 현대사 최대의 질곡을 딛고, 슬픈 남도 제주뿐 아니라 우리 민족 전체가 ‘함께 나아가는’ 상징적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한때 총칼을 겨눴던 유족회와 경우회도 손을 맞잡고 화해를 다짐한 바 있다. 이 상처를 보듬고 치유하려는 시도의 일환으로 4·3 ‘평화’ 공원이 문을 열기도 했다. 이처럼 좋은 화해의 자리, 치유의 기회를 찾아보기 힘들다.
그럼에도 대통령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이 자리에 서지 않았다. 대통령의 일정에 또 다른 어떤 우선순위가 있는지도 알 수 없고, 일각에서 제기하듯 4.3평화공원에 위패가 안치된 인민군과 남로당 인사들에게 대통령이 머리를 조아리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판단이 섰을 수도 있다. 그러나 역사는 역사, 우리는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정부가 이미 공식적인 입장을 밝힌 이상, 그에 걸맞은 후속조치들을 밟아나가야 한다. 조금씩 조금씩, 아프고 쓰리더라도 응어리를 풀어나가야 한다. 그런 화해와 화합을 이끌어 줄, 만화영화에서처럼 눈물 한방울로 시린 가슴을 따뜻히 덥혀줄, 우리의 대통령이 그런 지도자가 돼 주기를 바라는 것은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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